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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1 19:20 수정 : 2005.01.11 19:20


△ 지난해 알츠하이머 등으로 오랜 병고 끝에 타계한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미국 보수주의 운동이 본격화하기 시작하던 시절에 대통령이 된 반공주의자 레이건은 냉전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평가와 함께 인간적 매력도 있어, 높은 인기 속에 미국 보수우파의 지반확대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보수로 가는 미국 사회(3)

1. 보수의 새 거점-기독교복음주의
2. 3개 축-헤리티지재단, 러시 림보, 폭스뉴스
3. 보수주의 운동 발전사
4. 네오콘-눈 뜨고 꿈꾸는 자들
5. 진보의 부활은 가능한가

60년대말 우편물로 메시지 퍼뜨려
풀뿌리 운동서 차츰차츰 기반확산
보수 부자재단 돈줄 ‘밑거름’ 톡톡

“의심할 바 없이 지금은 진보의 시대다.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그렇게 밝힐 것이다.”

1964년 저명한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당시 사회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그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보수주의의 총아로 불린 배리 골드워터(공화)는 린든 존슨 대통령(민주)에게 참패했다. 존슨은 50개 주 가운데 44개 주 선거인단을 휩쓸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제임스 레스턴은 “골드워터는 대선만 진 게 아니라 보수주의의 근거마저 잃었다”고 평했다.

꼭 40년 뒤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조지 부시 대통령(공화)은 초접전의 예상을 뒤엎고 31개 주를 석권했다. 보수주의운동의 대부격인 리처드 비거리는 “진정한 보수의 시대가 열렸다”고 외치고 있다. 40년 동안 보수주의는 무엇을 한 것일까.

학계에선 미국 현대 보수주의운동의 태동을 1950년대 초로 잡는다. 잡지 〈내셔널리뷰〉와 보수주의이론을 담은 책 〈컨서버티브 마인드〉 등이 이때 출간됐다. 그러나 1960년대 거센 진보의 흐름 속에서 피폐했던 보수주의운동은 1960년대 말, 독특한 미국적 방식인 ‘다이렉트 메일’(다량발송 편지)을 통해 밑바닥을 파고들며 풀뿌리 운동의 기초를 놓기 시작한다.

비거리는 “보수주의 매체를 접할 길이 없던 수백만 유권자들이 다이렉트 메일을 통해 처음으로 보수주의 메시지를 받아볼 수 있었다. 또 메일을 받고 10달러, 25달러씩 기금을 내면서 이것이 보수주의운동 확산의 기반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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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보수 진영은 풀뿌리조직에서 진보세력에 밀리지 않을 만큼 세력을 확장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투표율이 높으면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유리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높은 투표율은 오히려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이건 오랜 기간 기층 조직을 다져온 보수주의 운동의 성과에 일정 부분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주의 운동이 이런 풀뿌리 운동만으로 발전한 건 아니다. 진보적 평론가인 에릭 올터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보수주의 운동 확산의 밑거름이 된 건 ‘돈’이다”라고 잘라말했다. 1970년대 들어 보수주의 운동단체와 싱크탱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데 기반을 제공한 게 바로 수억달러의 자산을 가진 보수 성향의 재단들이었다. 존 올린 재단, 스케이프 재단, 브래들리 재단, 스미스-리처드슨 재단 등은 매년 보수적 싱크탱크와 운동단체, 미디어에 수백만~수천만 달러를 지원했다.

한 예로 브래들리 재단은 2003년 신문과 공중파 텔레비전 방송의 진보적 편향을 비판하는 단체 ‘정확한 미디어’에 42만5천달러를 기부했다. 올린 재단은 그해 헤리티지 재단에 30만달러를 냈다.

우익 폭로언론인에서 진보적 평론가로 전향한 데이비드 브록은 그의 저서 〈우익에 눈먼 미국〉에서 이들 네개의 재단을 “보수주의를 지원하는 네 자매”라고 부르며 “이들이 〈아메리칸 스펙테이터〉 등 우익 잡지들의 적자를 보전해줬다”고 밝혔다.

에릭 올터먼은 “진보적 재단들이 현실에서 벗어난 좁은 학문적 주제에 집중해 있는 사이, 보수 재단들은 대중적 보수서적들의 출판에 수만~수십만달러씩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돈과 밑바닥 조직이 두차례나 치열한 접전에서 조지 부시를 승리로 이끈 보수 진영의 힘이다. 1932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국민 복지를 책임지는 큰 정부’를 주창하며 집권한 뒤 20년간 민주당 시대가 계속됐다.

보수 진영은 2004년 조지 부시의 재선을 새로운 ‘공화당 시대’의 도래로 본다. 비거리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시절에도 의회는 민주당 수중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하원까지 공화당이 안정 다수를 확보했다. 이젠 보수주의 어젠다를 밀어붙일 때다”라고 말했다. 그의 예측이 맞을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적어도 지금 미국이 새로운 시기로 접어들고 있는 건 분명하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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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생중계 채널이 ‘보수 조직화’ 기여

보수주의 운동의 조직화에 크게 기여한 건 공교롭게도 의회 활동을 생중계로 방송하는 시-스팬(C-SPAN) 채널이다.

시-스팬은 유선방송 확산에 맞춰, 유선방송 사업자들이 자금을 대서 1979년 탄생한 공영 성격의 유선방송 채널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시-스팬의 탄생으로 미국 안방의 시청자들은 진보적 공중파를 통하지 않고 직접 의회가 돌아가는 걸 볼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시청자 수는 일반 케이블 뉴스 채널보다 훨씬 적지만, 시-스팬 시청자들은 가장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명하는 층이란 점에서 미국 정치에서 중요하다. 시-스팬 시청자의 98%가 투표에 참여한다는 통계도 있다.

시-스팬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가 1980~90년대 미국 정계의 보수 흐름을 이끈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원이다. 매일 하원 회의가 끝날 무렵엔 의원들의 긴급발언 시간이 있다.

대부분의 의원들은 이때까지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 그러나 깅그리치는 시-스팬의 긴급발언 중계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전국 보수주의자들의 눈길을 잡아끄는 데 성공했다.

1994년 하원의장까지 올라 빌 클린턴 대통령과 정치적 대결을 벌였던 깅그리치의 출세는 이렇게 이뤄졌다. 그는 훗날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우리는 시-스팬을 이용했다”고 토로했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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