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민주당의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에서 이긴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8일 밤 지지자 집회에서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딸 첼시한테서 격려를 받고 있다. 맨체스터/AP 연합
‘안정적 변화’냐 ‘바꿔 돌풍’이냐 예측불허
당원만 참여 경선 많이 남아 자신
당원만 참여 경선 많이 남아 자신
개막 1주일이 못 된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이 파란을 거듭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깜짝’ 돌풍에 이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예상치 못한 반격이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1승1패를 주고받은 양쪽은 이제부터가 본격 승부라며 총력전 태세에 들어갔다. ‘여성이냐, 흑인이냐’ ‘변화냐 경륜이냐’ 선택을 앞둔 민주당의 고민은 깊어간다.
뉴햄프셔 주에서 회생한 힐러리는 만면에 웃음을 머금으며 지지자들에게 “감사합니다”(생큐)를 연발했다. 힐러리는 “이제 함께 뉴햄프셔가 내게 준 컴백을 미국 전체에 주도록 하자”고 말했다.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992년 경선 때 아이오와 주에서 대패해 중도하차할 위기에 빠졌다가, 뉴햄프셔 주에서 2위로 올라서며 ‘컴백 키드’라는 별명을 얻은 것에 빗댄 말이다.
자신감을 되찾은 힐러리의 얼굴에는 더욱 부드럽고 정감 있는 표정과 감정이 실렸다. 앞으로 뉴햄프셔에서 톡톡히 효과를 본 ‘감성 위주’의 선거운동을 강화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가 뉴햄프셔 승리 뒤 “내 목소리를 찾게 됐다”고 말한 것도 이런 변화를 점치게 한다. 참모들은 힐러리가 앞으로 유권자들과 더 많은 개인적 접촉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힐러리 진영은 또 오바마의 장점을 적극 ‘벤치마킹’할 계획이다. 오바마에게 빼앗긴 젊은 층들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과거의 경험이 아닌 미래의 비전에 더 많은 강조점을 둔다는 것이다. 9일 대외 일정을 잡지 않고 앞으로의 전략을 참모들과 숙의한 힐러리는 선거전략가와 홍보 참모를 보강하는 등 조직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아이오와 당원대회(코커스) 참패 뒤 캠프 내 반목과 참모 물갈이설, 자금 고갈로 울상이던 힐러리 진영은 이날 승리로 대역전의 발판을 확고하게 마련했다는 판단이다. 여론조사 결과가 워낙 나쁘게 나와 힐러리 진영은 7%포인트 정도로만 줄일 수 있으면 성공이라는 게 애초 분석이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오바마의 콧대를 누르게 되자, ‘힐러리 대세론’의 재점화는 시간문제라는 자신감으로 넘쳐난다. 아이오와 패배 뒤 기부금 제의가 끊겨 노심초사하던 힐러리 진영은 자금 마련에도 숨통이 트였다며 안도하는 표정이다.
아이오와의 패배가 워낙 쓰라렸던 힐러리 진영에서는 한때 오바마 열풍을 잠재우기 힘든 만큼 일단 정면승부를 피하자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22개 주에서 한꺼번에 경선이 열리는 다음달 5일의 ‘슈퍼 화요일’에 전력을 집중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승리로 방향을 다시 틀었다. 네바다 주(19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26일), 플로리다 주(29일) 등 이달 안에 열리는 경선에서 총력을 기울여 오바마가 다시 세를 회복하기 전에 눕히겠다는 것이다. 힐러리 쪽이 이런 자신감을 갖는 것은 남은 경선이 오바마에게 힘을 실어준 무당파들까지 참여하는 예비선거보다는 당원들로만 치르는 게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힐러리로선 이제 한 고비를 넘겼을 뿐이다. 당장 경선이 잇따를 지역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 네바다 주에서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재임 때 핵폐기장 건설 계획을 중단시켜 인심을 얻어놨지만, 영향력 있는 요식업노동자조합이 오바마 쪽으로 기울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와 플로리다의 흑인들도 미국 최초 흑인 대통령의 현실화 가능성에 들떠 마음이 흔들린다.
최대 난제는 오바마의 ‘바꿔 바람’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뉴욕 타임스>는 “오바마라는 이름은 이제 후보라기보다는 운동이 됐다”고 평했다. 힐러리는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탄력을 얻어 대권을 따낸 남편 클린턴의 전례가 되풀이되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강력한 상대 후보가 없고 클린턴이 가장 신선한 이미지를 지녔던 당시에 비해, 지금의 맞수 오바마는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게 고민이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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