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새 대통령 임무 막중
15일 ‘G20’ 경제외교 첫무대
“큰 위기에 직면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훌륭한 대통령인지를 증명해 보일 기회를 놓쳤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그의 자문을 맡았던 딕 모리스에게 건넨 말이다. 반면, 4일(현지시각) 미국 대선에서 당선이 유력한 버락 오바마는 이런 기회를 얻기에 충분할 만큼, 거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블룸버그 뉴스>가 전했다.
당선이 확정될 경우, 오바마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위기에 대한 대처다. 오바마는 3일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에서 “다시 4년 동안 앨런 그린스펀(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도 잘못을 인정한 정부 규제의 결여와 어수룩하게 설계된 감세정책, 늘어가는 재정지출 등을 감내할 수 있겠는가”라며 조지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을 몰아세웠다. 정권 교체 뒤, 경제 정책에서 가장 큰 변화가 초래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오바마는 특히, 정부의 감세정책이 중산층 가구를 돕는 데 극히 미약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연간 소득 20만달러 이하 가구에 대한 세금감면 혜택을 늘릴 것을 약속했다. 이어 사회기반시설 확충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 200만개를 늘리고, 향후 10년에 걸쳐 연간 150억달러를 재생에너지에 투자해 500만개의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해법이 간단치는 않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겨 붙으면서, 2차 경기부양책 마련이 시급한 상태지만, 내년 1조달러로 관측되는 재정적자에 어떻게 대처할지도 동시에 고민해야 한다. 부시 행정부에서 갓 시작된 금융시스템 개편 작업을 이어받아, 향후 워싱턴이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어떤 수준에서 행할 것인지도 관심사다. 15일 워싱턴에서 열릴 주요·신흥 20개국(G20) 정상회의는 금융시장 재편에 대한 오바마의 의지와 해법을 내비칠 첫 무대가 될 수 있다. 다만, 오바마 진영에선 행여 국제 공조가 실패로 끝날 수도 있는 정상회의에 대한 개입에 대해, 오바마가 성급한 행보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라크 내 미군 철군과 아프가니스탄 정국 안정에 대해서도 신속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오바마는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에서 “이라크 전쟁을 시급히 매듭지어 이라크에 매달 100억달러의 세금이 지출되는 것을 중단시키겠다”고 밝혔다. 유임이 유력시되는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바그다드와 워싱턴 간의 협상이 비상국면에 도달해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이라크 주둔 미군은 시리아 국경을 넘어 군사작전을 감행해, 이라크 정부가 불만을 표시해 왔다. 이 밖에도 오바마는 열악한 미국의 의료보험제도 개선, 교육제도의 개혁, 에너지 안보, 불법 이민자 문제의 해소 등을 중장기 과제로 꼽고 있다.
이런 막중한 과제에 대한 부담 때문에, 오바마 진영은 당선이 확정되면 며칠 안으로 차기 정부의 요직 인선을 단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더 타임스>가 4일 전했다. 내년 1월20일 대통령 취임식 이전에, 권력 공백을 피하고 시급한 현안을 해결해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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