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스탁 40주년 기념공연이 열린 15일 미국 뉴욕주 베델우즈센터에서 60~70년대 명성을 날렸던 영국 4인조 그룹 ‘텐 이어즈 에프터’ 멤버였던 리오 라이언스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베델/AP 연합
우드스탁 40주년 페스티벌
반전가요 부르며 추억 회상
반전가요 부르며 추억 회상
영원한 평화의 상징인가, 쇠락한 노년들의 노스탤지어인가?
지난 1969년 8월15~17일 미국 뉴욕주 베델의 한 농장에서 반전과 평화를 노래하던 ‘우드스탁 록 페스티벌’이 열렸다. 지미 핸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존 바에즈, 산타나, 더 후 등과 함께 그 농장에 모여 해방구를 열었던 50만명은 ‘우드스탁’을 ‘60년대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40년이 지나 그 자리에서 그 축제가 다시 열렸다. 지난 15일 밤 열린 ‘우드스탁 40주년 기념공연’에는 1만5천여명이 몰렸다. 15살 기타리스트 콘래드 오베르그가 40년 전 지미 핸드릭스의 절규를 흉내내며 오프닝을 열었다. 그의 두 번째 노래는 40년 전 그 무대에서 불렸던 시시아르(CCR)의 <수지 큐>였다. 40년 전에도 있었던 ‘컨츄리 조 맥도날드’는 월남전 반대 노래를 부르며, 베트남·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숨진 병사들의 이름을 부르며 ‘반전 분위기’를 끌어갔다.
40주년을 맞은 올여름 베델 농장에는 각종 전시행사가 이어졌고, 7만여명이 다녀갔다. 뉴욕에서 100마일 떨어진 이 마을에는 60살이 넘은 왕년의 히피들이 성성한 백발을 이고 귀환하는 장면이 줄을 이었다. <뉴욕 타임스>는 “40년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었다”고 보도했다.
10대 때 우드스탁 행사에 참석했던 듀크 데블린(58)은 <유에스에이 투데이>를 통해 3일간 비가 내려 진흙탕이 됐고, 불법집회라며 당국의 단수 조처로 마실 것마저 제대로 없었던 당시 상황에 대해 “서로가 서로를 배려했다”며 “공동체라는 느낌이 우리를 압도했다”고 회상했다.
우드스탁 행사는 지난 94년과 99년에도 두 차례에 걸쳐 기념공연(25주년, 30주년)을 가졌다. 30주년 행사는 공연 뒤, 불을 지르고 싸움이 벌어지는 등 폭력으로 얼룩졌다. 그러나 조용히 치러지는 이번 40주년 행사는 전반적으로 소풍 분위기라는 게 언론 반응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참석 군중 대부분은 정치적 이유가 아니라 음악을 즐기고 그때를 기억하기 위해 왔다”고 보도했다.
자신의 농장에서 콘서트를 열 것을 허락해 준, 고 맥스 야스거의 아들인 샘 야스거(67·변호사)는 “우드스탁은 우리가 때로 당연하다고 여기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표현이었다. 모일 권리, 비판할 권리, 재미있게 옷입을 권리, 또 자기 자신의 음악을 들을 권리 등이다. 우리가 그런 것을 잃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잃는다”고 <유에스에이 투데이>를 통해 말했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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