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대장정 하이커 급증
금융위기 유탄 금융맨 많아
비용 저렴…자급자족형도
금융위기 유탄 금융맨 많아
비용 저렴…자급자족형도
미국에서도 직장 잃은 사람들이 산을 찾는다.
최근 미국에서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나서는 사람의 수가 늘고 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이란, 말 그대로 미 동부의 애팔래치아 산맥을 종주하는 것으로, 우리로 치면 백두대간 종주와 비슷하다. 그러나 백두대간 종주가 670㎞에 약 70~80일이 걸린다면, 미국 남쪽 조지아주에서 최북단 메인주까지 14개주에 걸쳐 3498㎞에 이르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대략 6개월의 대장정을 요구한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실업자들이 단기간에 일자리를 구하기가 힘들어지면서, 그간의 삶도 돌아볼 겸 예전부터 생각만 했던 이 대장정 하이킹에 나서는 것이다. 한 하이커는 “트레일을 하면 나는 하이커지만, 트레일을 안 하면 나는 룸펜”이라고 말했다.
예년의 경우, 매년 봄에 약 1000명의 하이커들이 애팔래치아 남쪽 끝인 조지아주에서 출발했는데, 올해는 그 수가 1400여명에 이르렀고 초여름까지 수백명의 하이커들이 더해졌다. 이들 중에는 전직 금융회사 직원 등 금융위기의 유탄을 맞은 이들이 많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앞으로 경제학자들은 또다른 경제지표로 ‘트레일 지수’를 이용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이커들은 대개 음식과 숙박 등의 트레일 예산을 1마일당 1달러 정도로 책정한다. 그래서 트레일을 하면, 도시에서 지내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이들 중에는 하이킹 중에 마주치는 농장, 모텔 등에서 약간의 막일을 하고 음식과 잠자리를 얻는 자급자족형 트레일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 주로 청소, 오리떼에 먹이주기, 양떼몰이, 블루베리 따기, 잡초뽑기 등이다. 트레일 구간에 위치한 버몬트주의 한 농장은 애팔래치아 하이커들이 여름철 농장 노동력의 절반을 차지하기도 했다. 농장주들도 하루 일당 50~75달러 대신 그저 먹을 것과 잠자리만 제공하면 되기에 서로 윈-윈 게임인 셈이다.
20~30대 젊은층에서는 계속 일자리를 못 얻으면, 트레일이 끝난 뒤엔 평화봉사단(Peace Corps)에 들어가 아프리카나 남태평양 등으로 떠날 계획을 하는 이들도 많다. 평화봉사단은 가입 때 농사 경험 유무가 참고된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