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용의자 심문장면 담겨
이전엔 “92개 모두 폐기” 주장
진술 증거능력 재판서 논란일듯
이전엔 “92개 모두 폐기” 주장
진술 증거능력 재판서 논란일듯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2001년 9·11테러의 핵심용의자인 람지 비날시브(38)를 해외의 비밀감옥(일명 블랙사이트)에 가두고 심문하는 장면이 녹화된 동영상들을 몰래 보관해온 사실이 18일 확인됐다. 테이프의 존재 사실을 처음 보도한 <에이피>(AP) 통신은, 이 자료들이 비날시브에 대한 기소와 재판 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문제의 테이프들은 비날시브가 9·11테러 1년 뒤인 2002년에 파키스탄에서 체포돼 모로코의 비밀수용소로 옮겨진 뒤 촬영된 동영상 2개와 음성녹음 테이프 1개다. 미 중앙정보국은 9·11 이후 테러 용의자들을 고문이 묵인되는 동유럽과 아프리카 등 다른 나라의 비밀수용소에 감금하고 물고문 등 가혹행위를 해왔으나, 2005년에 그런 사실이 폭로되자 심문 장면을 담은 비디오테이프 92개 전부를 폐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2년 뒤인 2007년에 한 중앙정보국 요원이 테러대응센터의 책상 밑에서 비날시브 관련 테이프들을 발견했으며, 중앙정보국이 그것을 지금까지 비밀리에 보관해왔다는 것이다. 미국의 비밀수용소 운용을 보여주는 현존하는 유일한 녹화물인 셈이다.
람지 비날시브는 알카에다 함부르크 조직원으로, 9·11테러 당시 실제 비행기를 납치해 자살테러를 감행한 모하마드 아타와 독일에서 한방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미 중앙정보국 대변인은 18일 “문제의 테이프들은 비날시브가 수사관의 질문에 답변하는 모습을 찍은 것으로, 가혹행위 장면은 없다”고 말했다.
이 테이프들은 향후 비날시브의 재판 과정에서 극도의 심리적 위축상태에서 행해진 진술의 증거 능력에 대한 논란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비날시브의 변호인들은 현재 비날시브가 정상적인 재판을 받을 수 없는 상태라며, 비날시브가 비밀수용소에 구금돼 있을 당시의 의료기록 열람을 요구하고 있다. 비날시브는 현재 정신분열증으로 약물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은 미국 정부에 비날시브 테이프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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