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부채 추이
피치, S&P·무디스 이어…“연방 부채한도 확대하라”
재정적자로 인한 ‘디폴트’ 막으려…강등 가능성 낮아
재정적자로 인한 ‘디폴트’ 막으려…강등 가능성 낮아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미국 의회가 오는 8월 초까지 연방 부채한도를 확대하지 않으면 미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검토 대상에 올릴 것이라고 8일 밝혔다. 지난 4월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지난 2일 무디스에 이어 피치까지 3대 국제신용평가사 모두 미국 신용등급 조정을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피치의 데이비드 라일리 국가 신용등급 담당 대표는 “미국의 부채 한도가 제때 확대되지 않으면 통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세계 최대 차입국이자 기축통화 발행국인 미국이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에 들어가면 지금도 취약한 미국과 세계의 금융 안정성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피치는 또 미국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검토하게 되면, 미 연방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는 금융기관이나 공공기관도 등급 조정 검토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은 1942년 이래 모든 신용평가사들로부터 최고등급인 ‘AAA’를 유지해 왔다. 심각한 경제 위기가 닥친 적도 적지 않았지만, 신용등급이 흔들린 적은 없었다.
최근 신용평가사들이 한결같이 미국 신용등급에 대해 경고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막대한 재정적자 때문이다.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는 지난해 말 14조달러에 달했다. 이는 미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규모다. 지난달 16일 법적 부채한도(14조2940억달러)도 이미 넘었다. 미 정부와 의회는 디폴트만 면하도록 중앙은행의 예치금을 끌어쓰고 정부기금 투자지출은 줄이는 비상조처로 연명하고 있다. 이 조처도 8월 초면 끝나 그 전까지 부채한도 상향 조정에 합의해야 한다.
피치의 경고가 더해져 3대 신용평가사들이 모두 미국의 신용등급에 대한 지적을 했지만, 이날 뉴욕 주요 주가지수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미국 신용등급이 강등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피치의 이런 경고에 대해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부채한도 상향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걸 보여준 셈”이라고 말할 뿐이었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들 수 있어 신용평가사들이 쉽사리 신용등급 강등 조처를 취할 수 없고, 미 의회도 어떻게든 합의를 이뤄낼 수밖에 없다는 기대감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부채 규모가 상향 조정되더라도, 미국의 국가부채 문제는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는 데 있다. 미국은 지난해 이후 재정적자 규모가 조금씩 줄고 있긴 하지만 매년 1조원 이상의 재정적자가 계속됐고, 오는 10월부터 적용되는 2012 회계연도 예산안도 1조1020억달러의 적자 예산을 편성했다. 의료보험 개혁과 사회보장연금, 국방비 등 경직성 예산이 많아 줄일 곳도 없다. 올들어 오바마 대통령은 ‘12년간 4조달러’, 공화당은 ‘10년간 6조달러’의 재정적자 삭감을 주장하고 있으나, 절충이 쉽지 않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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