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상한 협상’ 이후로
미 경제 불신론 커져
각국, 금으로 눈돌려
미 경제 불신론 커져
각국, 금으로 눈돌려
크리스틴 라가르드 신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1일 <시엔엔>(CNN) 인터뷰에서 미국 재무부 채권에 대한 “긍정적 편향”이 줄어들게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말이 “미국 채권에 대한 아주 강한 신뢰가 약간 잠식됐다”는 뜻이라며, 미국 채권과 달러는 절대로 안전한 자산이라는 믿음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라가르드 총재의 평가는 경제 전문가들과 국제 금융시장 참여자들의 미국 경제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커졌음을 대변한다. 미국 정치권이 비록 지난 31일 부채 한도 협상을 타결했지만, 미국 정부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직전까지 간 상황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상처를 남긴 것이다. 국가 부도가 1980년대의 남미나 현재의 남유럽뿐 아니라 제1의 경제대국 미국에서도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게 입증됐기 때문이다.
미국 채권과 달러는 이제까지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대우받아왔다. 2차대전 뒤 국제금융에서 황제의 지위를 누려온 달러는 일본 엔, 독일 마르크, 스위스 프랑 등 여러 화폐의 도전을 뿌리쳤다. 1972년 금태환 중단을 선언했을 때도 달러의 위상은 흔들리지 않았다. 범유럽 화폐로 등장한 유로가 달러의 지위를 위협하는 듯했지만, 세계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질 때마다 달러는 금과 함께 ‘마지막 피난처’로 기능해왔다. 현재 미국 달러는 세계 외환 거래의 86%, 세계 외환보유고의 64%를 맡고 있다. 달러 표시 채권 비율은 46%에 이른다.
하지만 부채 한도를 둘러싼 소동으로, 어떤 경우에도 미국 채권과 달러는 안전하다는 믿음에 금이 가면서 금융시장의 태도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미국이 당장 디폴트는 모면했지만 신용평가회사들이 미국 채권에 대해 현재의 최상 등급(AAA)을 계속 유지하지는 않으리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정부는 현재 10년 만기 채권의 경우 연 2.8%라는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지만, 시장의 불신이 높아지면 금리가 올라가고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14조3000억달러(한화 약 1경5029조원)라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미국 채권 투자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중국 <신화통신>이 최근 “미국 지도자들이 전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며 직설적으로 비난한 것은 자국이 보유한 1조2000억달러어치의 미국 채권의 안전성을 걱정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빚투성이인 미국의 재정과 정쟁에 빠져 과단성 있는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정치권의 혼란은 달러의 가치와 위상에 본격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가 금을 사들이고 있는 것도 이런 전망과 무관하지 않다. 부채 협상 타결 직후인 1일 달러는 다른 통화들에 대해 가치를 조금씩 회복했으나 엔에 대해서는 2차대전 이후 최저치, 스위스 프랑에 대해서는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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