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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9·11 분노로 얻은 게 뭔가…관용 통해 함께 살기 배워야”

등록 2011-09-08 20:55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만난 리 아이엘피 9·11 가족연합회장이 10년 전 그날을 이야기하며 ‘용서와 화합’을 강조하고 있다.  뉴욕/권태호 특파원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만난 리 아이엘피 9·11 가족연합회장이 10년 전 그날을 이야기하며 ‘용서와 화합’을 강조하고 있다. 뉴욕/권태호 특파원
“나 따라 소방관 된 큰아들
무역센터 구조작업 나섰다
죽음도 못찾은채 사망 확인”
“내 아들이 다시 돌아올 순 없다. 그러나 내 아들의 아이들, 내 손자들을 위해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게 이제 내게 주어진 사명이다.”

10년 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WTC)에서 아들을 잃은 리 아이엘피(67) ‘9·11 가족연합회’ 회장은 지난달 26일(현지시각)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엘피 회장의 사무실은 아들 조너선이 숨진 무역센터 빌딩 현장이 바라다보이는 길 건너편 빌딩 12층에 있다.

이탈리아 이민자의 후손으로 천성이 쾌활한 그의 삶은 평온했다. 두 아들과 두 딸을 둔 그는 1996년 뉴욕시 소방관에서 은퇴한 뒤 낚시, 하이킹 등을 즐겼고, 일요일에는 온 가족이 모여 성당에 갔고, 함께 식사했다. 인생은 흐르는 강물 같았다. 두 아들도 아버지를 따라 뉴욕시의 소방관이 되어 큰아들은 퀸스에서, 작은아들은 브루클린에서 근무했다.

2001년 9월11일 ‘그날’,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에 내리꽂히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본 직후, 큰아들 조너선(당시 29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 무역센터로 출동명령을 받았어요.” “조심하거라.” 이 짧은 통화가 마지막이 됐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소방관 일을 하던 아들 조너선(아래)은 10년 전 9월11일 현장 구조작업 중 숨졌다.  뉴욕/권태호 특파원
아버지의 대를 이어 소방관 일을 하던 아들 조너선(아래)은 10년 전 9월11일 현장 구조작업 중 숨졌다. 뉴욕/권태호 특파원
전화를 끊은 아버지는 불안했다. 건물 화재 진화작업 도중, 무릎과 어깨를 다쳐 52살에 조기은퇴해야 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현장으로 나갔다. 현장은 먼지와 검은 연기로 가득 찼고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그는 반사적으로 사람들을 대피시켰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도 조너선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구조복을 다시 꺼내 입고 매몰자 구출과 시신 수습 작업을 벌였다. 시신 없이 아들의 장례식을 치른 뒤에도 아버지는 건물더미를 파고 또 팠다.

3개월 뒤인 12월11일, 조너선의 시신이 발견됐다. 얼굴은 건물 더미에 짓눌려 알아볼 수 없었지만, ‘아이엘피’라는 성이 적힌 소방복, 아내와 두 아들과 찍은 지갑 속 가족사진이 있었다. 아들을 찾은 뒤에도 3개월간 그는 매일 ‘그라운드 제로’를 찾았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10주년이라는 건 내겐, 조너선을 본 지 10년이 지났다는 뜻”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진 청년들이 왜 자살 항공테러를 벌였는지 오랫동안 생각하면서, 그들에 대한 ‘분노’보다 ‘포용’으로 방향점이 옮아갔다. “나도 분노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몰랐던 순간이 많았다”며 “그러나 미워하는 건 쉽다. 하지만 분노를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나? 9·11에서 3000여명이 숨졌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그보다 더 많은 미국인 6000여명이 숨졌다. 우리가 얻은 게 뭔가? 오사마 빈라덴의 죽음? 그의 죽음으로 모든 게 다 끝났나?”라고 그는 되물었다.

피해자 가족 모아 모임 결성 뒤
애도센터 건립·장학금 조성 등
“더 나은 내일 만드는 게 임무”


처음 실종된 가족들을 찾기 위해 자연발생적으로 조직된 여러 개의 ‘피해자 가족 대책위원회’가 통합되면서 ‘9·11 가족연합회’가 만들어졌고, 그는 회장이 되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교육’, ‘관용’(tolerance)을 이야기했다.

그는 또다른 희생자 가족인 제니퍼 애덤스와 손잡고 2006년 9월, 무역센터 건너편에 ‘트리뷰트 WTC 방문자센터’를 만들었다. 센터 안에는 그날의 참담함을 담은 영상과 희생자들의 생전 사진, 방문자들과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위로의 글들로 채웠다. 아들 조너선이 마지막에 입고 있었던 노란 소방복도 전시돼 있다.

가족을 잃고 웅크리고 있던 피해자 가족들에게는 9·11 현장 등 가이드 투어 역할을 맡겼다. 수익금을 모아 희생자 이름으로 장학금도 만들었다. 지금까지 230만명이 다녀갔다.

아이엘피는 말했다. “나는 방문객들의 글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그들은 계속 계속 이야기한다.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테러리즘을 멈춰야 한다, 증오를 멈춰야 한다’고.” 그는 이슬람에 대해서도 “이 땅에 수억명의 아름다운 무슬림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테러리스트들은 그중의 극히 일부분이다”라고 덧붙였다. 아이엘피는 지난해 플로리다의 한 목사가 코란을 불태우는 행사를 벌이려 할 때에도 “분노가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이를 강하게 반대했다.

아이엘피는 그러나 아버지를 잃은 손자들에 대해선 “‘가족’이 주는 쉼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조너선이 숨질 때, 9살이었던 앤드루는 아버지의 죽음을 기억하는 것을 지금도 힘겨워한다. 3살이었던 오스틴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조너선의 아내는 재혼했다.

조너선의 꿈은 아버지가 일했던 뉴욕시 소방대 최정예 구조단인 ‘2구조단’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다. 조너선은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9·11 당시 소방관이 된 지 4개월이었던 조너선의 동생 브랜던은 지난 7월5일, ‘2구조단’에 들어갔다.

뉴욕/ 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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