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문가들 “제조능력 없어…FBI, 괴짜를 희생양 삼아”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9~10월 미국을 ‘백색가루 공포’로 몰아넣었던 ‘탄저균 우편물 테러’의 진실이 영원히 미궁에 빠질지도 모르게 됐다. 당시 미국 정치인들과 언론사들에 무작위로 배달된 탄저균 우편물로 5명이 숨지고 17명이 감염됐다. 이후 세계 각국에서 모방 범죄가 잇따르면서 ‘생화학 테러’ 공포가 확산됐다.
미국의 생화학 전문가들은 미 연방수사국(FBI)이 사건 수사를 과학적 증거 없이 얼버무렸으며 범인으로 지목돼 자살한 미 국방부 소속 생화학 전문가 브루스 이빈스는 무죄라고 주장했다고 <뉴욕타임스>가 9일 보도했다. 수사당국이 엉뚱한 사람을 용의자로 몰아붙였으며 중요한 단서를 외면한만큼 전면 재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학술전문지 <바이오테러리즘과 바이오 디펜스> 최신호에 실릴 예정이다.
루이지애나 주립대의 휴 존스 박사 등 3명의 생물학, 화학 전문가들은 연방수사국의 수사보고서를 1년6개월 동안 검토한 뒤, 테러에 쓰인 탄저균은 수사 당국의 발표와 달리 고도의 기술로 제조된 것으로 이빈스의 테러 혐의와는 거의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은 당시 탄저균 분말에 섞여 있던 이물질인 주석 성분에 주목했다. 주석은 미생물에 치명적인 금속이어서 ‘탄저균 테러’와는 어울리기 때문이다.
존스 박사는 “문제의 탄저균에 주석이 있었다는 것은 주석을 촉매제로 이용해 배양균에 특수 실리콘 코팅을 했다는 뜻으로, 이는 매우 특별하고 전문적이며 필요 이상으로 정교한 과정”이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미생물실리콘 코팅은 제약사들의 항생제 제조 과정에서 흔히 쓰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전미과학아카데미의 앨리스 개스트 박사도 “탄저균 우편물의 화학적 특징이 수사 과정에서 충분히 탐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아가 아카데미가 비밀로 분류된 미국 정부의 탄저균 연구를 전면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연방수사국도 수사 초기엔 주석 성분을 “흥미로운 요소이자 결정적 실마리”로 봤으나, 이후 수사과정에선 주석 함유 사실을 무시한 채 입을 닫았다. 연방수사국은 우편물의 발송지인 뉴저지주 프린스턴이 이빈스의 연구실 근처이며, 이빈스가 주변과의 관계도 끊은 채 밤늦도록 연구실에만 쳐박혀 ‘미치광이 브루스’란 별명을 얻은 점을 들어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기소할 참이었다. 이빈스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난 아무 기억이 없다. 니다. 내가 제 정신이라면 그런 짓은 안할 거다”라고 한 모호한 말도 혐의를 굳혔다.
이빈스는 2008년 연방수사국의 기소 방침이 알려지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연방수사국은 지난해 “일부 과학적 의문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빈스의 유죄 증거가 압도적”이란 결론을 유지한 채 사건 수사를 공식 종결했다.
이빈스의 옛 동료들은 이빈스가 탄저균 분말을 만들 수 없었으며 수사국이 곤혹스런 처지에 몰린 그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연방수사국이 이빈스 외에도 육군 소속 과학자 여러 명을 용의자로 추궁했으나 모두 무혐의 처리했으며, 한 사람에겐 460만 달러의 합의금까지 지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 법무부의 딘 보이드 대변인은 “추측은 추측일 뿐, 우리는 이빈스가 직접 탄저균을 배양해 분말로 만들었다는 우리의 결론을 유지한다”고 반박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이빈스의 옛 동료들은 이빈스가 탄저균 분말을 만들 수 없었으며 수사국이 곤혹스런 처지에 몰린 그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연방수사국이 이빈스 외에도 육군 소속 과학자 여러 명을 용의자로 추궁했으나 모두 무혐의 처리했으며, 한 사람에겐 460만 달러의 합의금까지 지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 법무부의 딘 보이드 대변인은 “추측은 추측일 뿐, 우리는 이빈스가 직접 탄저균을 배양해 분말로 만들었다는 우리의 결론을 유지한다”고 반박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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