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위트 전 미 국무부 북한 담당관
북 외무성, 작년 민간채널 회의서
9·19 ‘동시행동’ 원칙 폐기 뜻 밝혀
미국의 진정성 있는 행동 원해
북 외무성, 작년 민간채널 회의서
9·19 ‘동시행동’ 원칙 폐기 뜻 밝혀
미국의 진정성 있는 행동 원해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할 것이라는 신호가 이미 지난해 7월에 있었으며, 이런 정보가 미국 정부 쪽에 전달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의 대표적인 대북정책 전문가로 손꼽히는 조엘 위트(사진) 전 국무부 북한 담당관은 16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7월 북한 외무성 관리들은 비공식 회의에서 북한이 핵 억제력 강화와 미사일의 추가 개발을 향한 길로 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국과 한국 대선 이후 우리가 어려운 시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점이 그때 이미 명백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다른 미국 민간 전문가와 함께 당시 싱가포르에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 한성렬 북한 유엔대표부 차석대사 등과 이른바 ‘트랙2’(민간채널) 회의를 연 바 있다.
위트 전 담당관은 “북한 관리들은 2005년 9·19 공동성명의 ‘동시 행동’ 원칙을 폐기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들은 미국이 북한에 진정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먼저 행동을 취할 것을 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북한이 핵 억제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확대할 것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북한에 먼저 핵무기를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에 먼저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조처를 취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북한이 상황 악화를 감수할 것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북한 관리들이 당시 구체적으로 어떤 조처를 취하게 될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위트는 “북한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서로간에) 공통된 인식이 있었다”며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핵탄두의 미사일 탑재, 고농축 우라늄 생산, 비핵화 포기, 9·19 합의 폐기 등이 그 리스트에 속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북한 관리들은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를 공표할지 여부를 내부에서 검토중이라는 점도 말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당시 북한 관리들은 자신들의 메시지를 언론에 알려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위트는 “통상 이런 회의는 비밀에 부쳐진다”며 그런 요청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 역할이 북한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 만큼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대신 백악관과 국무부, 정보당국 등 미국 정부에 이런 경고·메시지를 매우 분명하게 알렸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관리들은 경청했으나 그 이후 후속조처에 대해선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당시 전언을 통해 북한이 9·19 합의 폐기를 시사한 듯하다는 내용이 <포린 폴리시> 등 일부에 보도되긴 했으나, 회의 참석자가 언론에 직접 말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 등의 고강도 조처를 고려하고 있음을 내비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을 원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언론 공표를 요청한 것은 여론을 통해 미국 정부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그 이후 북-미 접촉이 어느 수준에서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미국은 대통령 선거 국면에 접어들면서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위트는 “지난해 하반기에 북한이 오바마 2기 행정부가 닥칠 첫번째 외교정책 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을 경고했으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위트는 미국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 4년간 이명박 대통령과 공조해서 펴온 정책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그는 지난 4년간 정책을 ‘약한 제재’와 ‘약한 외교’ 접근법이라고 특징짓고, 이것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과 대화하지 않음으로써, 그리고 북한이 나쁜 행동을 할 때 제재로 대응함으로써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상 그것은 북한의 능력을 키웠을 뿐이고 그들의 행동은 점점 더 나빠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는 이명박 대통령과 매우 긴밀하게 공조를 했는데 문제는 이 대통령의 대북 접근법이 국가적 이해보다는 보수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위트는 북한의 이번 핵실험과 관련해 “북한이 노동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 이상의 것에 대해선 증거가 없어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2016년에 북한이 핵무기 50개를 보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있다”며 “북한은 파키스탄·인도 같은 소규모 핵강국이 되는 길을 가고 있다”고 말했다.
위트는 대응책과 관련해 강한 제재와 강한 외교를 결합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강한 제재만으로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증명됐다며 북한과의 직접 대화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식량이나 원유 지원으로 문제를 푸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 그건 통하지 않는다. 북한은 안보 문제 해결을 기대하고 있다. 북한과 직접 대면해 북한이 원하는 평화협정과 미국이 원하는 대량파괴무기 프로그램 폐기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트는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했던 1993년부터 1995년까지 국무부 북핵특사였던 로버트 갈루치 전 차관보의 선임보좌관으로 일한 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설립을 주도하는 등 북한정책을 주로 담당했다. 현재는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에서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를 운영하고 있다.
워싱턴/글 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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