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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미 최연소 사형수, 화해·용서로 거듭나다

등록 2013-06-18 20:11

16살에 선고 쿠퍼 43살 돼서 출소
유족 용서·사형제 폐지 활동 결실
28년 전이었다. 1985년 5월14일 미국 인디애나주의 소도시 게리에 사는 78살의 할머니, 루스 펠케가 자신의 집에서 수십군데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범인은 폴라 쿠퍼라는 15살 소녀와 3명의 또래 여고생들이었다. 돈이 필요했던 이들은 마리화나와 술에 취해 ‘성경학교 선생님’인 펠케의 집을 찾아갔다. 루스 펠케를 잔인하게 살해한 뒤 집을 뒤졌지만 이들이 발견한 건 고작 10달러였다. 이듬해, 주범인 쿠퍼는 사형을 선고 받았다. 미국에서 최연소 사형수였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학대와 불운으로 가득찬 쿠퍼의 유년시절이 드러났고, 이어 16살 소녀에게 사형은 너무 가혹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200만명 넘게 쿠퍼의 사형 선고를 재고해 달라는 청원서에 서명했다.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인디애나 주지사에게 서한까지 보내 설득했다. 쿠퍼 사건을 계기로 미국 안팎에서 사형제 폐지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여기에 결정적인 힘을 보탠 건, 쿠퍼에게 희생된 루스 펠케의 손자, 빌 펠케였다.

본래 사형제 찬성론자이던 빌 펠케는 살인자에게 사형은 인과응보라고 여겼다. 하지만 몇달 뒤 회심의 순간이 찾아왔다. 파산·이혼 등 고통스런 개인사를 겪던 그는 어느 날 기도 도중 할머니가 쿠퍼와 그의 가족에게 사랑과 연민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법정에서 쿠퍼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지기 직전, 쿠퍼의 할아버지가 “우리 아이를 죽이지 말아달라”며 울부짖던 광경이 생각났다. 펠케는 기억해냈다. 그때 쿠퍼의 뺨에서 흘러내리던 눈물을.

1년반쯤 지나 펠케는 마음속에서 쿠퍼에 대한 연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화해를 위한 살인 피해자 가족모임’에 참여해 사형제 폐지를 위해 열심히 활동했다. 쿠퍼와 수백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불가능한 우정’을 쌓아갔다. 교도소에 수감되고 나서도 비행을 저질러 신문 1면을 장식한 쿠퍼도 달라졌다. 교도소에서 못다한 학업을 이어갔고, 자신처럼 불우한 시절을 보낸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소망도 가지게 됐다. 그는 1989년 60년형으로 감형받았고 2011년엔 2년 뒤 출소 결정이 내려졌다.

펠케의 용서와 쿠퍼의 변화는 결실을 거뒀다. 쿠퍼는 17일 오전 10시, 43살의 중년이 돼 교도소를 나왔다. 펠케는 이날 <시엔엔>(CNN)과 인터뷰에서 “그동안 쿠퍼에게 자신의 행동을 설명해보라고 말한 적이 없지만 그가 얼마나 후회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펠케는 앞으로 쿠퍼의 사회 적응을 도울 작정이다. 며칠 안에 쿠퍼와 함께 컴퓨터와 옷을 사러갈 거라고 펠케는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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