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각) 국가안보국(NSA)의 감시 프로그램을 제한하고 외국 정상에 대한 도청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에 대한 전화통화·이메일 내역을 무차별적으로 수집하는 활동은 유지하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오전 워싱턴 법무부 청사에서 연설을 통해 이런 내용을 담은 국가안보국의 감시프로그램 개혁안을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선 개인 통화기록이나 이메일 등을 통해 얻은 ‘메타데이터’ 수집은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수집된 정보를 보관하는 기관을 현재 정보기관에서 제3의 민간기구에 맡기는 방안을 제안했다. 에릭 홀더 법무장관은 오는 3월 말까지 이와 관련한 개혁안을 마련키로 했다.
또 특정 개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에 앞서 특별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받거나 사전에 승인을 받도록 했으며, 감청대상이 되는 용의자의 요건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아울러 오바마 대통령은 수십명의 동맹국 정상에 대한 도청활동은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전 중앙정보국(CIA) 요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도청을 당한 사실이 드러나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또 우리나라 대통령을 비롯한 35개국 정상에 대한 도청 활동이 이뤄져온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다만, 외국 정부기관에 대한 도청 활동을 유지할 방침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사생활 침해를 위해 의도적으로 감청프로그램을 악용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적절한 보호장치 없이는 미국의 시민자유권이 침탈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감청프로그램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국가안보를 위협하지 않는 일반인들을 감청하지 않는다는 점을 전 세계인들이 알아야 한다”며 “이것은 외국지도자들에게도 적용된다”고 말했다.
이번 개혁안에는 비밀 해외정보감시법원(FISC)에 공익변호사를 배치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이것의 시행 여부는 의회가 결정해야 한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개혁안에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반발했다. 미국시민자유연합의 앤서니 로메로 사무총장은 “오바마 대통령은 시민들이 통화기록을 수집하는 행위를 중단하지 않겠다고 했다”며 “오바마 대통령이 이에 대한 우려를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실질적인 개혁은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국가안보국이 대형 정보기술업체들의 컴퓨터 시스템에 침입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을 하지 않아 이들 업체들로부터도 비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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