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8월9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면서 침통한 표정으로 보좌진에게 고별연설을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제럴드 포드 도서관
[닉슨 사임 40년] 결정적 증거 됐던 ‘닉슨 테이프’ 재조명
워터게이트 사건 발생 엿새째인 1972년 6월23일 오전 10시4분 미국 백악관 집무실. 비서실장 밥 핼더먼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연방수사국(FBI)의 수사 진행 상황을 이렇게 보고했다. “연방수사국이 통제가 되지 않고 있다. 수사가 생산적인 지점으로 가고 있다. 우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는 이어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하여금 연방수사국에 수사가 더 진전되지 않게 협조 요청을 하도록 지시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워터게이트 사건 용의자들이 별건으로 중앙정보국 관할 사건에 연루돼 있는 것을 이용해 수사를 막아보려는 계산이었다.
닉슨 대통령은 “좋다”며 이 계획을 승인했다. 그는 “우리는 많은 것들에서 헬름스(중앙정보국장)를 보호했다”고 덧붙였다. 중앙정보국장이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의미였다. 닉슨 대통령은 민주당 쪽이 이 사건을 물고 늘어지는 것을 의식해 “좋아. 거칠게 해라. 그게 그들(민주당)이 하는 방식이다. 우리도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장면은 닉슨 대통령을 사임시키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이른바 ‘명백한 증거’로 불린다. 두 사람의 이 대화 녹취록이 법정 공방 끝에 1974년 8월5일 공개됐고, 닉슨은 나흘 뒤인 8월9일 하야 성명을 내고 백악관을 떠났다.
재임시절 모든 대화 통째 녹음
워터게이트 사건 뒤 ‘테이프’ 밝혀져 닉슨, 사건 은폐 개입 드러나고
연루된 관리 도피도 구체 논의
불법수단으로 정보수집 지시도 “은폐 않았다면 아무일 없었을 것”
“닉슨 테이프에서 교훈 얻어야” 닉슨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한 지 40년을 맞아 미국 사회에서 그의 퇴진을 반추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닉슨 사임과 관련한 다양한 책과 다큐멘터리, 세미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이 쏟아지고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 현대사에서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 암살과 베트남전쟁, 9·11 테러 등과 함께 미국 사회를 뒤흔든 가장 충격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대선을 4개월여 앞둔 1972년 6월17일 밤 공화당 후보인 닉슨 대선캠프의 사주를 받은 5명의 괴한이 워터게이트 복합빌딩에 입주해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침입해 문서를 촬영하고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붙잡힌 것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백악관 고위인사들을 포함한 수십명이 기소됐다. 당시 사건 관련자들의 인터뷰와 전문가들의 평가 등 다양한 움직임이 있지만 단연 시선을 끄는 것은 이른바 ‘닉슨 테이프’다. 이 테이프는 닉슨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과 캠프데이비드 별장에서 닉슨이 나눈 대화를 통째로 녹음해 놓은 것을 말한다. 과거 대통령들은 필요한 경우에만 녹음을 했지만 닉슨은 개인적 기록을 위해 전화통화까지 포함해 모든 대화를 자동으로 녹음하도록 하고, 녹음 사실은 측근 몇 명만 알도록 했다. 이 테이프의 존재는 비공개로 돼 있다가 1973년 7월 한 측근이 재판정에서 이를 실토해 그 존재가 알려졌다. 닉슨 사임 40주년을 맞아 리처드 닉슨 재단 등에선 이 테이프에 실린 닉슨의 음성을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게 하고 있다. 또 당시 백악관 법률고문으로 워터게이트 사건 은폐공작에 참여했다가 나중에 닉슨을 배신하고 수사에 협조했던 존 딘은 <닉슨 방어>(The Nixon Defense>라는 책에 녹취록과 함께 해설문까지 실었다. 그는 기존에 공개됐던 447개의 대화록 외에 634개를 추가로 풀어냈다. 그는 이 작업을 하는데 4년여가 걸렸다. 두 대학교수는 워터게이트 사건 외에 중국과의 관계 개선과 옛소련과의 데탕트(긴장완화) 같은 외교적 업적 등을 포함한 녹취록을 책으로 펴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했던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로부터 “권위가 있다”라는 평가를 받은 딘의 책은 닉슨이 워터게이트 건물에 침입해 도청을 하라는 지시에 직접 연루돼 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로 사건 발생 초기 녹취록에는 닉슨이 누가 이것을 지시했는지를 측근들에게 묻는 장면들이 여러 차례 나온다. 대통령재선위원회의 존 미첼 위원장과 대통령 측근들이 사건을 모의했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사건 은폐 과정에는 닉슨이 초기 단계부터 매우 깊숙이 개입했음을 보여준다. 이 녹취록의 백미는 바로 닉슨이 사건 은폐를 위한 논리를 측근들과 소상히 상의하는 장면들이다. 그는 쿠바인들이 쿠바에 적대적인 민주당 대선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해 개입했다는 음모론이나, 사건과 연루된 전직 백악관 관리를 외국으로 도피시키기, 대통령재선위원회 법무 자문위원인 고든 리디가 최종 책임을 지도록 하는 ‘꼬리 자르기’ 등 다양한 방안들의 강점과 위험요소들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사건 발생 나흘째인 6월21일 핼더먼 비서실장이 리디를 통한 ‘꼬리 자르기’ 방안을 제안하자, 닉슨은 “리디가 기꺼이 하려 할까?”라고 묻는다. 비서실장은 그가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닉슨은 미첼 위원장의 개입 여부에 반신반의하며 그가 개입했는지를 묻는다. 비서실장이 “미첼에게 물었으나 답을 안 했다. 진위를 모르겠다”고 하자, 닉슨은 “아마도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곧바로 “하지만 그것에 대해 나에게 말하지 말라. 당신이 원하는 것을 추진해라. 그러나 리디가 혐의를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좋다”고 말했다. 닉슨은 주요 측근인 미첼이 여기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면 곧바로 자신에게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는 미첼에게 이에 대해 직접 묻지 않았다고 딘은 설명했다.
‘닉슨 테이프’에는 워터게이트 사건 이전에 이미 닉슨이 측근들에게 불법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국내 정치정보를 수집할 것을 지시했던 사실도 담겨있다. 1973년 5월23일 닉슨은 후임 비서실장인 알렉산더 헤이그에게 이른바 ‘휴스턴 플랜’에 대해 얘기했다. 휴스턴 플랜이란 닉슨 집권 초기인 1970년에 국내 정보 수집을 위해 도청과 우편물 검색 등을 비밀리에 재가한 것을 말한다. 닉슨은 “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불법적 수단을 포함해 필요한 어떤 수단이라도 사용할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돼 4개월 징역형을 살았던 딘은 책에서 “닉슨이 측근들에게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정치정보를 수집하라고 부추기지 않았다면, 그리고 사건 발생 순간부터 은폐는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닉슨은 이 테이프가 자신을 파괴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뒤늦게 이 테이프를 모두 폐기하고 녹음을 중단할 것을 지시했다. 이 테이프의 존재가 알려지기 석달 전인 1973년 4월9일이었다. 그는 핼더만 비서실장에게 “우리가 이 방에서 워터게이트에 관해 나눈 논의가 녹음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 지시는 실행되지 않았고, 결국 그를 추락시켰다.
전문가들은 닉슨 테이프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학자인 로버트 달렉 전 보스턴대 교수는 <뉴욕 타임스>에 “중국 개방과 옛소련과의 데탕트라는 업적을 세웠음에도 닉슨이 호의적이지 않은 역사적 평판을 갖게 되는 이유를 일깨워준다”며 “의심 많은 성격을 가진 정치인을 고위직에 앉히는 것을 경계하는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밥 우드워드는 딘의 책에 대한 서평에서 “이 테이프는 닉슨의 범죄와 권력남용, 정적에 대한 집착, 편협함 등을 드러내준다”며 “이것이 그를 소속 당으로부터도 버림받고 퇴진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우드워드와 함께 당시 워터게이트 사건을 취재했던 <워싱턴 포스트>의 칼 번스타인은 지난달 말 세미나에서 “이 테이프는 우리가 정부와 백악관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트위터 등으로 뉴스가 24시간 돌아가는 시대에도 우리는 특히 대통령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잘 모른다”고 말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워터게이트 사건 뒤 ‘테이프’ 밝혀져 닉슨, 사건 은폐 개입 드러나고
연루된 관리 도피도 구체 논의
불법수단으로 정보수집 지시도 “은폐 않았다면 아무일 없었을 것”
“닉슨 테이프에서 교훈 얻어야” 닉슨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을 사임한 지 40년을 맞아 미국 사회에서 그의 퇴진을 반추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닉슨 사임과 관련한 다양한 책과 다큐멘터리, 세미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이 쏟아지고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 현대사에서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 암살과 베트남전쟁, 9·11 테러 등과 함께 미국 사회를 뒤흔든 가장 충격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대선을 4개월여 앞둔 1972년 6월17일 밤 공화당 후보인 닉슨 대선캠프의 사주를 받은 5명의 괴한이 워터게이트 복합빌딩에 입주해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사무실에 침입해 문서를 촬영하고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붙잡힌 것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백악관 고위인사들을 포함한 수십명이 기소됐다. 당시 사건 관련자들의 인터뷰와 전문가들의 평가 등 다양한 움직임이 있지만 단연 시선을 끄는 것은 이른바 ‘닉슨 테이프’다. 이 테이프는 닉슨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과 캠프데이비드 별장에서 닉슨이 나눈 대화를 통째로 녹음해 놓은 것을 말한다. 과거 대통령들은 필요한 경우에만 녹음을 했지만 닉슨은 개인적 기록을 위해 전화통화까지 포함해 모든 대화를 자동으로 녹음하도록 하고, 녹음 사실은 측근 몇 명만 알도록 했다. 이 테이프의 존재는 비공개로 돼 있다가 1973년 7월 한 측근이 재판정에서 이를 실토해 그 존재가 알려졌다. 닉슨 사임 40주년을 맞아 리처드 닉슨 재단 등에선 이 테이프에 실린 닉슨의 음성을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게 하고 있다. 또 당시 백악관 법률고문으로 워터게이트 사건 은폐공작에 참여했다가 나중에 닉슨을 배신하고 수사에 협조했던 존 딘은 <닉슨 방어>(The Nixon Defense>라는 책에 녹취록과 함께 해설문까지 실었다. 그는 기존에 공개됐던 447개의 대화록 외에 634개를 추가로 풀어냈다. 그는 이 작업을 하는데 4년여가 걸렸다. 두 대학교수는 워터게이트 사건 외에 중국과의 관계 개선과 옛소련과의 데탕트(긴장완화) 같은 외교적 업적 등을 포함한 녹취록을 책으로 펴냈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벌어진 워터게이트 복합빌딩. 뉴욕타임스, 제럴드 포드 도서관
워터게이트 복합빌딩에 설치하려다 발각된 도청장치. 뉴욕타임스, 제럴드 포드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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