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의 눈물 20일 저녁 미국 메릴랜드주 하이어츠빌에서 온두라스 출신 불법체류자 오스카르 알파로의 가족들이 500만명의 불법체류자가 혜택을 받는 이민정책 개혁안을 발표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들은 뒤 서로 껴안고 있다. 이날 하이어츠빌에서는 이민법규 개혁을 요구하는 단체의 주최로 오스카르 가족 등 100여명이 함께 모여 대통령의 연설을 시청했다. 하이어츠빌/AP 연합뉴스
“미국은 애초 이민자의 나라”
불법체류 500만명 추방 유예
한국인도 수만명 구제될 듯
공화 “정부 폐쇄” “역풍 우려” 갈려
불법체류 500만명 추방 유예
한국인도 수만명 구제될 듯
공화 “정부 폐쇄” “역풍 우려” 갈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최대 500만명의 불법체류자들이 추방 유예를 받게 되는 내용의 ‘이민정책 개혁’ 행정명령을 밀어붙였다. 공화당은 ‘군주적 발상’이라고 반발하며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얻게 되는 내년 입법 전쟁을 예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각) 저녁 대국민 연설에서 이민정책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 안은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가진 자녀를 두고, 미국에서 5년 이상 체류한 부모가 범죄경력 조회를 거치고 세금을 낼 경우, 일정 기간 합법적으로 거주하며 취업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게 뼈대다. 2010년 1월1일 이전 미국에 입국한 미성년자 27만명 등도 구제 대상이다. 이번 개혁안이 실행되면 1120만명으로 추정되는 미국 내 불법체류자 가운데 약 45% 가량이 구제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23만여명으로 추정되는 미국 내 한인 불법체류자도 많게는 10만명까지 구제받을 수 있을 것으로 한인 단체들은 내다봤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이 결정은 합법적일뿐 아니라, 지난 반세기 모든 대통령이 취했던 행동”이라며 “이민정책을 개혁하는 나의 권한이나 생각에 의문을 품는 의원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민 개혁법안을 통과시키라’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는 “추방의 대상은 아이·엄마·가족이 아닌 범죄자”라며, 단순히 이민허가증이 없다는 이유로 음지에서 저임금과 추방의 두려움으로 고통받는 이웃을 외면하지 말자고 호소했다. 그는 이들의 추방 유예가 “시민권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상식적인 선에서 현실적인 대책을 내놨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은 애초 이민자의 나라”라고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민정책 개혁 행정명령이 ‘권한 남용이자 위법행위’라는 공화당의 비판에 대해 여러 차례에 걸쳐 “합법적”이라고 반박했다. 발표에 앞서 백악관은 이례적으로 법무부에서 제출한 33장짜리 내부 법률 검토 의견서와 자유주의자·보수주의자를 포함한 미국의 대표 헌법학자·법학자 10명이 “합법”이라고 연서한 서한을 공개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대통령의 권한으로 불법체류자 구제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공화당 소속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와 로널드 레이건 그리고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행정명령을 단행한 바 있다. 미 템플대학의 피터 스피로 교수는 “형식과 강도 면에서는 틀림없이 전례가 없다”고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공화당은 즉각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대통령의 발표 직후 “미국민의 뜻을 무시함으로서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무법정치를 확인하고 그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신뢰마저도 져버렸다”고 말했다. 랜드 폴 상원의원은 트위터에 “자신이 왕이라고 생각하는 대통령을 위한 준비물”이라며 왕관·왕좌 등의 이미지를 담은 글을 올렸다. 인디애나·텍사스·위스콘신 주지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제어하기 위한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겉모습과는 달리 공화당이 어떻게 대응할지는 미지수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공화당 일부는 다음달 12일까지 통과돼야할 내년도 예산안을 볼모로 연방정부 폐쇄(셧 다운) 카드를 내밀지만, 일부는 정부 폐쇄가 불러올 역풍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번 결정으로 혜택을 보게 될 수많은 히스패닉계 유권자의 표심이 미칠 영향도 고려 대상이다.
실제 오바마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2016년 대선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에 우호적인 히스패닉계에 혜택을 주는 동시에 구제받게 되는 불법체류자들이 민주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는 대체로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행보에 지지를 보내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충분하지 못한 조처’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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