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서 물탱크·학교까지 털려
‘도둑 근절용’ 140만달러 배정
‘도둑 근절용’ 140만달러 배정
태양이 작렬하는 8월 여름날이었다. 미국 시에라네바다 산맥 자락의 작은 도시 산후안 북쪽 소방서 대원들은 산불 위험이 가장 높은 시기를 맞아 경계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시설 점검에 나선 소방서 직원은 바닥에 고인 물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확인해보니 거대한 소방서 물탱크의 4분의3이 비어 있었다. 소방수 30t을 도둑맞은 것이다.
보이드 존슨 소방대장은 “정말 깜짝 놀랐다”며 “이 동네 사람들이라면 모두 산불 걱정을 하는 이때 이런 일이 생긴 것을 보고 식겁했다”고 말했다. 소방서는 물탱크마다 전자자물쇠를 설치했다. 물 공급에는 30초 정도 시간이 더 걸리지만 물을 도난당할 걱정은 하지 않게 됐다. 인근 초등학교와 동물병원 물탱크도 ‘습격’을 받았다.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자 도둑질은 멈췄지만, 세 건 모두 범인을 잡지는 못했다.
태평양 고기압이 이상 발달하면서 기상관측 이래 가장 심각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물 도둑이 빈번하게 출몰하고 있다. 물 암시장까지 등장하면서 캘리포니아는 물 도둑과의 전쟁 중이다.
캘리포니아 수자원관리국은 올해 물 도둑 근절을 위해 140만달러의 예산을 배정받았다. 캘리포니아주 북쪽 해안가에 있는 멘도시노 카운티 경찰은 ‘물 도둑 핫라인’을 개설했다. 물 도둑 잡기 순찰도 돈다. 실제 한 경찰은 8월 순찰 중 흙길에 떨어진 물자국을 따라 가 도둑을 잡았다. 물탱크 트럭 운전자는 “수로에서 물을 퍼올려 값을 가장 잘 쳐주는 사람한테 팔 계획”이라고 털어놨다.
물 도둑이 많이 든 지역을 보면 캘리포니아 북쪽 외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불법 마리화나 재배가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네바다 카운티 관계자는 “우물이 마른 마리화나 재배자들이 계곡 물을 퍼다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는 아예 회사를 차려 물이 부족한 농가와 우물이 마른 가정집에 물을 팔고 있다.
물 도둑과 함께 캘리포니아 외각에 늘어난 것이 ‘수맥 탐지가’다. 미국에서 와인 판매량이 4번째로 많은 ‘브론코 와인’은 캘리포니아 와인밭 4만에이커(약 4900만평)를 관리하기 위해 수맥 탐지가들을 고용하고 있다고 <알자리라>는 전했다. 브론코 외에도 인근 중소 농장주 10여명도 지하수를 찾기 위해 수맥 탐지가들을 수소문하고 있다.
가뭄의 여파는 도시에서도 나타난다. 덥고 건조한 날씨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의 수영장에 물을 채우고 정원에 물을 주는 것도 문제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5년 전부터 정원에 물주는 횟수를 제한했는데, 주 정부는 7월 ‘물 낭비범’에게 500달러의 벌금을 물리는 규제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캘리포니아주의 모든 지역은 가뭄지역으로 선포된 상태다. 60%는 심각한 가뭄을 겪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예전부터 물이 부족한 지역으로 대수로를 건설해 시에라네바다 쪽과 콜로라도강에서 물을 끌어와 써왔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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