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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183번 물고문·180시간 안재우기…CIA의 ‘잔혹한 민낯’

등록 2014-12-10 16:42수정 2014-12-10 17:33

9·11 이후 미국의 빈라덴 추격 실화를 그린 영화 ‘제로 다크 서티’의 고문 장면.
9·11 이후 미국의 빈라덴 추격 실화를 그린 영화 ‘제로 다크 서티’의 고문 장면.
‘고문실태 보고서’에 나오는 사례들
익사 직전까지 물 붓기, 직장으로 물 주입
눈 가린 채 머리에 총구 대고 전동 드릴 돌리기,
빗자루 손잡이로 성고문 협박, 옷 벗겨 저체온증 사망도
너무 잔혹해 CIA 요원들도 “울며 숨을 쉴 수 없는 상황”
미국 상원의원 정보위원회가 9일 공개한 미 중앙정보국(CIA)의 고문실태 보고서는 ‘세계의 인권 파수꾼’ 역할을 자처했던 미국의 입지를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이번 보고서를 보면 중앙정보국이 자행한 물 고문·잠 안재우기 고문·성 고문 협박 등은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잔혹한 방법으로 지속된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에 나온 고문 방법 중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은 물 고문의 일종인 ‘워터 보딩’이었다. 워터 보딩은 대상자의 몸을 판에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 뒤 얼굴에 물을 붓는 방법으로, 중앙정보국은 그동안 3명에게만 이 방법을 제한적으로 썼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보고서를 보면 물 고문을 당한 수감자는 그보다 많았고, 중앙정보국이 물 고문을 행한 적이 없다고 밝힌 아프가니스탄의 감옥(솔트 피트)에 물고문 시설이 완벽히 갖춰진 사진도 공개됐다. 2001년 9·11 테러를 계획한 총책으로 지목된 칼리드 쉐이크 무함마드는 “수차례 익사 직전까지 갔다”고 중앙정보국 의료진이 전했다. 무함마드는 183차례 물고문을 당했는데, 많을 때는 이틀간 65번을 당했다. 당시 조사관들은 그가 숨을 쉬려고 하자 그의 입술을 붙잡고 물이 다른 곳으로 흘러내릴 수 없도록 한 뒤 들이부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정보국 의료진의 승인하에 어떤 수감자들은 직장을 통해 급식 또는 물 주입이 이뤄지기도 했다. 중앙정보국 신문 책임자는 이 방법을 두고 “수감자를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고문 기법 중에는 수감자의 체모를 전부 깎고 옷을 벗긴 채 낮은 온도의 흰 방에 넣은 뒤 밝은 조명과 큰 소음에 노출하는 방법도 있었다. 또 수감자의 눈을 가린 상황에서 총구를 머리에 대고 전동 드릴을 작동해 공포감을 극대화하는 방법, 빗자루 손잡이를 성고문 도구로 쓰겠다고 협박한 방법도 드러났다. 한 수감자는 180시간 동안 잠 안재우기 고문을 당했다.

중앙정보국이 신문에 사용한 고문법들은 부시 행정부 시절 법무부에서 승인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보고서에 적힌 고문 방법들 중에는 허가를 받지 못한 방법들도 있었다. 수감자들에 대한 고문이 너무 가혹해 중앙정보국 요원이 제지하려고 했으나 상급자들에 의해 묵살된 경우도 드러났다. 보고서는 2002년 8월 타이에 위치한 중앙정보국 시설에서 실시된 아부 주바이다에 대한 고문이 너무 심해 참여했던 요원들이 “울며 숨을 쉴 수 없는 단계”까지 이르렀다고 전했다. 또 일부 요원들은 가혹행위가 계속될 경우 전출 요청을 하겠다고 말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주바이다는 9·11 테러 뒤 알카에다 고위급으로 지목되며 붙잡힌 첫 용의자였다. 미국 ‘비밀 시설’에 수감된 첫 사례이기도 했다. 끝없이 계속되는 백색소음에 노출되고 잠 안재우기 고문과 물고문으로 숨이 끊어질 뻔한 첫 대상자였다. 보고서를 보면 부시 행정부 법률 자문가들은 주바이다를 ‘고문의 한계를 실험하는 대상’으로 적시한 메모를 작성하기도 했다. <에이피>(AP) 통신은 최근 공개된 부시 행정부 시절 문건을 인용해 주바이다가 2002년 8월에만 83차례의 물고문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정보국은 주바이다가 신문 중 숨질 경우 그의 시체 처리 방침을 사전에 마련해, 화장하기로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정보국이 전자우편을 통해 보낸 보고서를 보면 주바이다는 물고문을 당한 뒤 “완전하게 의식을 잃고 벌어진 입 한가득 거품을 물었다”고 묘사됐다. <비비시>는 주바이다가 가로 53㎝ 세로 76㎝의 상자에 감금된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주바이다에 대한 고문은 중앙정보국 비밀 시설 신문의 ‘본보기’가 됐다. 보고서를 보면 주바이다는 고위급이 아닌 ‘피라미’였으며 고위정보를 알고 있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주바이다는 현재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에서 기소조차 되지 않은 미결수로 12년째 수감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보고서에서 드러난 또 다른 사례로 ‘솔트 피트’에 수감됐던 굴 라흐만은 벽에 달린 수갑을 차고 하의 탈의한 상태에서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앉도록 강요당했다. 그는 다음날 아침 저체온증으로 숨져 쓰러진 상태로 발견됐다. 넉달 뒤 라흐만의 조사를 담당했던 조사관은 “지속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낸 데 대해 2500달러(250만원)의 포상금을 받았다. 실제 당시 중앙정보국에서 인준한 가이드라인는 수감자들에게 수갑을 채운 상태에서 완벽한 어둠 속에 격리하고, 겨울에도 난방을 제공하지 않아도 됐다. 중앙정보국 중앙에 보고하지 않아도 자체적 판단으로 72시간까지 수갑을 채워 세워둘 수 있었으며, 수감자에게 찬물을 끼얹을 수 있도록 돼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중앙정보국의 잔혹한 고문 뒤에는 군 심리학자 출신 제임스 미첼과 브루스 제슨의 제안이 있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중앙정보국이 두 심리학자에게 8100만달러(약 898억원)를 주고 고문 기술을 연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중앙정보국에 ‘워터 보딩’과 구타, 잠 안재우기, 추위에 노출하는 방법, 좁은 상자에 대상자를 가두고 곤충을 넣는 방법 등 10가지 고문법을 ‘강화 신문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제시했고, 39명이 이 프로그램에 따른 고문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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