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 CIA 고문 보고서 공개
“테러용의자 119명 이상 구금”
유엔, 책임자 기소 등 처벌 촉구
“테러용의자 119명 이상 구금”
유엔, 책임자 기소 등 처벌 촉구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수행한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이었던 중앙정보국(CIA)의 테러 용의자 불법 구금·고문 실태가 9일(현지시각) 만천하에 공개됐다.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는 이날 발표한 ‘중앙정보국 구금·신문 보고서’에서 중앙정보국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2008년까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등 외국에 설치한 비밀 수용소에 테러 용의자 119명 이상을 구금하고, 이 가운데 39명 이상에게 고문을 가했다고 밝혔다. 정보위는 중앙정보국의 관련 자료 약 600만쪽을 검토해 67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보고서를 5년여 만에 완성했으며, 이 가운데 요약본(525쪽)을 이날 공개했다.
보고서는 중앙정보국이 이른바 ‘구금·신문 프로그램’을 통해 물고문과 잠 안 재우기, 관에 넣고 살해 위협, 항문에 물 주입 등 잔인한 고문을 자행했다고 적시했다. 한 구금자는 수용소 바닥에 발이 쇠사슬로 묶인 상태에서 저체온증으로 숨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이런 고문을 통해 테러 음모를 막거나 테러 지휘부에 관한 중요 정보를 얻어내지 못해 효과도 없었다고 보고서는 결론 내렸다.
보고서는 상황이 이러한데도 중앙정보국은 백악관과 의회에는 ‘강화된 신문 기법’(고문)으로 추가 테러를 막고, 오사마 빈 라덴 등 테러 지휘부를 추적하는 데 성공해 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거짓 보고를 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빈 라덴의 소재지는 다른 정보기관에서 파악했으며, 중앙정보국이 구금자를 통해 얻은 관련 정보도 고문을 가하기 전에 실토를 받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 중앙정보국이 조작된 기밀정보를 특정 언론에 흘리는 수법 등을 통해 여론을 호도했다고 지적했다.
조사를 주도한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 정보위원장은 이번에 드러난 실태는 미국 역사의 ‘오점’이라고 규정하고, “어떤 용어로 포장하든 수감자들은 고문을 당했다”고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중앙정보국의 가혹한 신문 기법은 미국과 미국민의 가치에 반하는 것”이라며 “그게 내가 취임하자마자 고문을 금지한 이유이고, 이런 방법이 발 붙이지 못하도록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지속적으로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앙정보국과 공화당은 보고서 공개에 반발했다. 존 브레넌 중앙정보국장은 과거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의 행동이 테러 위협을 막고 실제 공격 음모를 와해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안이 국제문제화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벤 에머슨 유엔 대테러·인권 특별보고관은 성명을 통해 “국제 인권법에 어긋나는 조직적 범죄와 엄청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며 “미국 정부는 고문에 책임이 있는 중앙정보국 및 정부 관리들을 기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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