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쿠바 53년만에 관계정상화
1959년 반미 카스트로 혁명
미국 침공·소련핵무기로 위기
미국 정권따라 훈풍·칼바람
1959년 반미 카스트로 혁명
미국 침공·소련핵무기로 위기
미국 정권따라 훈풍·칼바람
미국 마피아의 세계를 그린 영화 <대부2>에서, 새 대부가 된 마이클 콜레오네는 ‘패밀리’의 사업을 합법적 영역으로 확장하면서 쿠바로 눈을 돌린다. 1950년대 쿠바는 미국 사업가들에게 떠오르는 ‘블루 오션’이자 물 좋은 휴양지였다. 그러나 1959년 1월1일 피델 카스트로가 이끈 쿠바 혁명으로 상황이 급변한다. 친미 바티스타 독재정권이 쫓겨나는 장면은 영화에도 잘 묘사돼 있다. 이는 미국-쿠바 간 53년 앙숙 관계의 서막이기도 했다.
미국은 1902년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겨 스페인 식민지였던 쿠바를 챙긴다. 3년간의 군정 통치 끝에 독립국가를 세워주지만, 사실상 미국의 안마당이나 다름없었다. 카스트로 혁명정부는 정권을 잡은 직후 미국에 ‘공존하자’는 제스처를 보이지만 무시당한다. 1961년 쿠바는 자국 내 모든 미국 기업들을 몰수해 국유화하고 토지개혁과 소득분배개혁 등을 실시해 사회주의 정책을 본격화한다. 미국으로선 동서 냉전이 달아오르던 시기에 턱밑 카리브해에 반미친소 공산 정권이 들어선 셈이었다.
미국은 1961년 쿠바와 단교한 데 이어, 쿠바의 반체제 망명자들을 훈련해 쿠바 피그스만을 침공하지만 처참한 실패로 끝난다. 악화일로를 걷기 시작한 양국 관계는 이듬해인 1962년 미국이 쿠바에 대한 전면적 경제 제재에 착수하고 쿠바가 옛소련의 핵미사일 기지를 끌어들이려 하면서 절정의 위기로 치닫는다.
이후 극도로 대립했던 양국은 1977년 지미 카터 대통령이 집권하고 양국이 상호 이익대표부를 설치하면서 잠시 훈풍이 부는 듯했다. 그러나 1981년 미국에 로널드 레이건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냉전의 칼바람이 몰아쳤다.
양국의 긴장과 대립은 1990년대 동유럽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후로도 좀체 풀리지 않았다. 1992년 미국은 ‘쿠바 민주화법’을 만들어 쿠바를 명실상부한 ‘외딴 섬’으로 고립시켜 버렸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1962년 미국의 경제봉쇄 이후 지금까지 쿠바가 입은 경제적 손실이 연평균 12억달러라고 추산한다.
이와 별개로 미 중앙정보국(CIA)은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40여년간 무려 638차례나 집요하게 피델 카스트로 암살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뒷날 카스트로는 “올림픽에 ‘암살에서 살아남기’ 종목이 있다면 단연 내가 금메달일 것”이라는 농담을 했을 정도다. 그러나 2006년 라울 카스트로가 권력을 넘겨받은 뒤 ‘현실적 생존’을 모색하고 미국도 쿠바 봉쇄의 실익이 없다는 걸 인식하면서 양국 사이에 해빙 조짐이 싹트기 시작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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