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르모 구티에레스(사진 앞쪽)는 1년 반 전 국영기업 부사장직을 그만두고 아바나 시내에 식당 레호네오를 열었다. 지난 22일 저녁 미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구티에레스가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 박현 특파원
[쿠바 개혁·개방 현장을 가다] (1) 반미에서 선회, 왜?
쿠바식 자본주의 실험 현장
쿠바식 자본주의 실험 현장
기에르모 쿠티에레스(53)는 1년 반 전 국영기업 부사장직을 그만두고 아바나 시내에 식당 ‘레호네오’를 차렸다. 말이 부사장이지 월급이 30쎄우쎄(CUC·한국돈 약 2만500원)밖에 안돼 모아놓은 돈이 없었다. 그러나 직장에 있을 때 알게 된 스페인 사람한테서 투자를 받고 동료 한사람과 힘을 합했다. 투자금은 모두 6만쎄우쎄였다. 식당 한쪽에선 쿠바식 음식을, 다른 한쪽에선 샌드위치와 맥주, 커피를 판다. 개인사업자 1명당 설치할 수 있는 좌석을 50개로 제한한 정부 규제를 우회해, 음식점에 50개, 샌드위치·맥주·커피 가게에 50개를 설치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사업에 대만족이다. 손님은 하루에 100~120명 가량 된다고 했다. 주말 새벽 2~3시에는 좌석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고 한다. 그는 “손님은 외국인과 쿠바인이 절반씩”이라며 “근처에 디스코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밤늦게까지 놀다가 여기 와서 허기를 채우는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하루 매출은 500~600쎄우쎄. 이중 세금 10% 내고, 월 임대료로 1200쎄우쎄를 낸다. 본인은 매출의 15~20%(약 75~120쎄우쎄)를 가져간다고 했다. 은퇴 전보다 3~4배 많은 돈이다. 그는 “종업원이 32명인데, 이들은 월급 50쎄우쎄에다 매일 손님들이 주는 팁까지 받는다”고 했다. 그는 아바나 사람들이 이 정도 돈 벌기 쉽지 않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현재 아바나엔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500여개에 이른다.
지난 21일 저녁 쿠티에레스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30여명의 단체 손님이 몰려왔다. 대부분 노인들이었다. 이들과 함께 온 관광 가이드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온 관광객들”이라며 “미국이 가족 방문 등 12가지 경우만 여행을 자유화하고 일반 관광은 여전히 금지시켰지만 이 사람들은 대부분 일반 관광객들”이라고 소개했다. 미-쿠바 국교정상화 선언 이후 미국 관광객들이 물밀듯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 같았다.
식당 같은 자영업은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2011년 단행한 경제사회개혁안 가운데 상당히 성공적으로 추진되는 경우에 속한다. 자영업 종사자는 2011년 5만명에서 지난해 40만명 가량으로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쿠바식 자본주의 실험을 현장에서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쿠바의 개혁개방은 되돌릴 수 없는 길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국영기업 부사장 지낸 식당 주인
“손님의 절반이 외국인…수입 4배”
개혁개방의 첫발 내디뎠지만
기간산업·경제특구 개발 걸음마
군부 등 기득권 세력 저항 여전
시민들 “개혁 속도 느리다” 불만 그러나 라울의 개혁안이 성공하려면 관광과 에너지, 광산, 설탕, 항만, 경공업 등 기간산업의 개발이 제 궤도에 올라야 한다. 쿠바 내 자본이 부족한 현실에서 이런 산업이 발전하려면 외국인들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지만, 아직 그런 단계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쿠바는 외국인 지분 투자를 49%까지만 허용하다 지난해 법을 개정했다. 프로젝트별로 심사를 해 100% 투자도 가능하도록 했지만, 아직까지 허용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는 실정이다. 라울 카스트로 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마리엘 경제특구 개발 사업도 아직 초기 단계다. 아바나 서쪽 45㎞ 지점에 있는 이 항구에 485㎢ 규모의 경제특구를 개발해 각종 외국인 회사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브라질 정부에서 6억달러의 차관을 받아 기반시설을 닦고 있으나 다른 외국인 투자 실적은 아직 없다.
이는 군부 등 기득권 세력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군부는 관광과 부동산, 설탕, 농업 등 주요 산업을 산하 국영기업을 통해 장악하고 있다. 예컨대, 국방부 산하 국영기업인 가비오타는 외국인 회사와 합작한 쿠바 내 호텔의 20~25%를 통제하고 있다.
아바나에서 만난 시민들 사이에선 개혁의 속도가 느리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변호사는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개혁을 하려다보니 매우 조심스럽게 개혁이 진행되고 있다”며 “우리는 더 빠른 속도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관건은 라울 카스트로가 2018년 임기를 마칠 때까지 개혁을 얼마나 진행시킬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이후 지도부가 어떤 정책을 채택할지다. 그는 형 피델 카스트로보다는 실용주의적이지만 근본적인 개혁가로 보기는 힘들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그는 자본주의 도입 실험을 하면서도, 현 체제 존립을 정당화하는 교육·의료·연금 등 복지 정책을 유지하는 동시에 경제 성장을 이뤄내야 하는 지난한 과제를 안고 있다. 개혁 5년째를 맞이하지만 지난해 경제는 목표치(2.2%)에 훨씬 못 미치는 1.3% 성장에 그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쿠바 연구자인 테드 피콘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라울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변화 폭이 매우 좁다”며 “라울의 은퇴 이후 차세대 지도부는 더 폭넓은 개혁을 시도할 수 있으나, 쿠바 정치체제가 폐쇄적이어서 현재로선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아바나/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손님의 절반이 외국인…수입 4배”
개혁개방의 첫발 내디뎠지만
기간산업·경제특구 개발 걸음마
군부 등 기득권 세력 저항 여전
시민들 “개혁 속도 느리다” 불만 그러나 라울의 개혁안이 성공하려면 관광과 에너지, 광산, 설탕, 항만, 경공업 등 기간산업의 개발이 제 궤도에 올라야 한다. 쿠바 내 자본이 부족한 현실에서 이런 산업이 발전하려면 외국인들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지만, 아직 그런 단계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쿠바는 외국인 지분 투자를 49%까지만 허용하다 지난해 법을 개정했다. 프로젝트별로 심사를 해 100% 투자도 가능하도록 했지만, 아직까지 허용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는 실정이다. 라울 카스트로 정부가 야심차게 발표한 마리엘 경제특구 개발 사업도 아직 초기 단계다. 아바나 서쪽 45㎞ 지점에 있는 이 항구에 485㎢ 규모의 경제특구를 개발해 각종 외국인 회사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브라질 정부에서 6억달러의 차관을 받아 기반시설을 닦고 있으나 다른 외국인 투자 실적은 아직 없다.
아바나 시내 한 국영병원 앞에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사진이 걸려 있다. 쿠바는 지금도 모든 시민들에 대한 무상의료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사진 박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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