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수도 아바나 혁명광장에 위치한 내무성 건물 외벽에 쿠바 혁명 지도자 중 한명인 체 게바라의 얼굴과 함께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아바나/박현 특파원
미국과 쿠바가 국교 정상화의 길로 들어섬에 따라 이제 쿠바와 외교관계를 맺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이스라엘만 남게 됐다. 이스라엘은 지난 20여년 동안 유엔에서 미국의 대쿠바 금수조처 해제 결의를 할 때마다 미국 편을 들어 반대한 유일한 국가였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이지만, 쿠바가 한국과 수교하지 않은 것은 것은 쿠바와 북한 간의 밀접한 관계가 주요 원인인 것으로 알려진다.
1960년 국교를 수립한 북한과 쿠바는 지금까지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10여년 전부터 쿠바와 외교관계 수립을 위해 공을 들여 왔으나 아직 북한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지금도 미주에서 가장 많은 50명 안팎을 아바나 소재 대사관에 파견하고 있다. 지난해 말 유엔총회에서 북한 인권 결의안 표결이 이뤄질 때도 쿠바가 총대를 메고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에 반대하는 수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그만큼 북한 외교에서 쿠바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북한은 앞으로도 쿠바와 한국간 수교를 총력 저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쿠바는 1980년대 중반 북한이 쿠바에 군수품을 무상으로 지원해준 것을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쿠바는 옛소련이 더이상 안보 지원을 할 수 없다고 통보해 위기의식을 느꼈는데, 김일성 북한 주석이 소총 10만정과 탄약을 무상으로 보내줬다고 한다. 카스트로는 2013년 자서전에서 당시를 회고하며 북한에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나라는 군사 교류 외에 경제나 문화 교류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쿠바에도 몇년 전부터 <내조의 여왕> 등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한류가 퍼지고, 한국 관광객이 연 4000명이 이르는 등 교류가 늘고 있어 국교 수립의 여건은 무르익고 있다는 게 현지의 분위기다. 미-쿠바 간 국교정상화 선언 발표 이후 현대·기아차와 삼성전자, 엘지전자 등 국내 대기업들이 잇따라 쿠바를 방문해 사업 확대 방안을 타진 중이다. 쿠바는 경제개혁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에 목말라 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에게는 유리한 조건이다. 한쿠바교류협회 권병안 사무국장은 “한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수교를 하고 싶어하지만 쿠바는 의리를 소중히 여겨 북한과 동시 수교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워싱턴·아바나/박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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