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2013년 붙잡혔다가 숨진 것으로 확인된 미국인 여성 구호활동가 케일라 뮬러(26). AP 연합뉴스
유족들 자필편지 공개
“감옥 안에서도 자유로울수 있어
얼마가 걸리든 포기하지 않아”
“감옥 안에서도 자유로울수 있어
얼마가 걸리든 포기하지 않아”
“감옥 안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에 인질로 붙잡혀 있던 스물여섯살 미국인 구호활동가 케일라 뮬러가 생전 부모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가 10일(현지시각) 공개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뮬러의 유족에게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한다”며 뮬러의 사망을 공식 확인했다. 지난 6일부터 제기된 사망설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던 뮬러의 가족들은 “가슴이 찢어진다”는 성명과 함께 그가 이슬람국가에 붙잡혀 있으면서 지난해 봄께 쓴 자필 편지를 공개했다.
뮬러는 “여러분, 이 편지를 보고 있다면 그건 아마 내가 아직 붙잡혀 있지만 내 감방 동기들은 풀려났다는 의미일 거예요”라며 운을 뗐다. 2014년 2월11일 쓰기 시작했다는 공책 한장 분량의 편지는 가족에게 전하고픈 수많은 말들을 조금이라도 더 담고 싶었던 듯 깨알같은 글씨로 빽빽하다. 그는 “나는 전혀 다치지 않았고 건강하며 안전한 장소에서 존중받으며 좋은 대접을 받고 있어요”라고 썼다. 언제 전해질지 모르는 편지를 조금씩 이어갈 때마다 가족 생각에 눈물을 흘린다고 했다.
가족에게 용서도 구했다. 그는 “내가 ‘고통받았다’고 한다면, 내가 가족들을 얼마나 큰 고통에 빠뜨렸는지를 생각할 때일 뿐”이라고 했다. “절대로 용서해달라고 말하지 않을게요. 난 용서받을 자격이 없으니까요”라고 쓴 구절에선 회한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며 “(자유의 몸이 되기까지) 얼마가 걸리든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라며 용기를 잃지 않았다. 이 편지는 뮬러와 함께 시리아의 이슬람국가 수용시설에 붙잡혀 있던 인질들이 풀려나면서 부모의 손에 전해질 수 있었다.
뮬러의 고향인 애리조나주의 소도시 프레스콧에서는 가족과 친구들이 열정적이고 따뜻했던 뮬러의 “자유로운 영혼”을 추모했다. 친구 에린 스트리트는 “케일라는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함께 나누면서도 기쁨을 전해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였다”고 회고했다.
뮬러는 고등학교 때부터 약자들의 편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그는 북미 원주민 부족인 호피족이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이웃 도시 플래그스태프의 산봉우리가 개발로 훼손될 위기에 처하자 반대 운동에 나섰다. 노던애리조나대학에 진학해서는 아프리카 수단 내전의 난민 등을 돕는 ‘다르푸르 구호동맹’에서 3년간 활동했다. 짬짬이 쿠바 관타나모 기지 수감자들에 대한 학대도 조사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2010년에는 팔레스타인 접경지에서 국제연대 활동에 참가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동예루살렘의 반쯤 무너진 집들 앞에서 잠을 청하며 몸으로 이스라엘의 강제 철거를 막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묘사했다.
2012년, 그는 돌아오지 못할 마지막 활동 지역이 된 터키-시리아 국경지대로 향했다. 터키에서 덴마크 난민위원회 일을 했던 뮬러는 시리아 내전을 피해 나온 난민들을 돌보며 시리아 어린이들의 상처를 보듬으려 노력했다. 그는 2013년 고향의 지역신문 <데일리 쿠리어>와의 인터뷰에서 “수없이 많은 시리아인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내가 살아있는 한 이 고통이 일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도록 방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5살 생일을 앞두고 있던 2013년 8월4일 그는 한 시리아 남성과 함께 시리아로 들어갔다. ‘국경 없는 의사회’ 사무실의 전기시설을 수리하기 위해 출장길에 나섰던 시리아 남성과 동행한 뮬러는 그들의 안전 문제를 우려한 단체 쪽의 배려로 사무실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 터키로 돌아가던 길에 그는 이슬람국가 대원들에게 납치당했다.
이슬람국가는 지난 6일 요르단군의 공습으로 건물이 무너져 뮬러가 숨졌다며 그의 가족에게 그의 주검을 찍은 사진들을 보냈고, 미국 정부는 10일 그의 사망 소식을 공식 발표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케일라 뮬러가 2014년 봄에 써서 보낸 편지.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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