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기 수요집회에서 초등학생 이화윤양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에게 드리는 편지를 낭독한 뒤 이용수 할머니와 포옹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아베 (총리)는 지금이라도 크게 눈을 뜨고 보세요. 역사의 산증인 이용수가 있습니다. 아베 앞에 딱 서서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려고 생각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7) 할머니는 21일(현지시각) 미국 의사당에서 하원의원들의 연설을 지켜본 뒤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오는 29일 아베 총리의 의회 합동연설 때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2007년 하원 청문회 증언으로 하원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던 이 할머니는 아베 총리의 과거사 왜곡 시도를 두고 볼 수 없어 다시 먼길을 나선 것 같았다.
붉은색 한복 차림을 한 이 할머니는 이날 몸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지했지만, 기분은 좋다고 했다. 하원의원들이 본회의장 연설에서 과거사를 부정하려는 아베 총리를 질타하면서 공식 사죄를 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할머니는 “미국 의원들과 동포들을 비롯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무척 노력하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우리가 자발적으로 따라갔다고 하는데, 아니다. 16살 때 밤에 분명히 군인들이 들어와서 끌려갔다. 대만 신주 가미카제 부대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조선의 딸들을 전쟁터에 끌고 가 놓고선 이 죄를 모르고 망언을 하고 있다”며 “지금도 늦지 않았다. 아베는 눈을 똑똑히 크게 뜨고 역사의 산증인을 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할머니는 아베 총리가 최근 위안부 피해자들을 ‘인신매매’의 희생자로 표현한 데 대해서도 “70년이 지나 돈을 써가면서 거짓말을 진실로 바꾸려고 하는데, 안 된다”며 분노를 표시했다.
이 할머니는 26일 보스턴에서부터 시작되는 아베 총리의 방미를 맞아 아베 총리를 규탄하는 시위와 기자회견을 여러차례 열 예정이다. 21일 오전에는 <워싱턴 포스트>와 4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고 워싱턴정신대문제대책위 쪽은 전했다.
이 할머니는 2007년 하원 청문회에서는 위안부로 끌려가게 된 과정, 일본군들로부터 겪은 수모와 강간 등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낱낱이 증언한 바 있다. 당시 할머니는 “역사의 산증인으로 이 자리에 섰지만, 겪은 일들을 얘기해야 하는 게 너무 부끄럽다”고 말문을 연 뒤, 16살 때 한밤 중에 군인들에게 끌려가 “자살하려고 해도 죽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성노예 생활을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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