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위안부 발언 긍정적 해석
“한국이 판 깰까” 따로 만나 속닥속닥
“한국이 판 깰까” 따로 만나 속닥속닥
지난 16일 오후 미국 워싱턴 국무부 1층 ‘딘 애치슨 강당’. 한·미·일 외무차관이 3자 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했다. 3국 외무차관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열린 회의에서인지 긴장감이 감돌았다. 조태용 외교부 1차관이 발언을 할 때는 토니 블링컨 미국 부장관과 사이키 아키타카 일본 사무차관이 동시에 조 차관을 주시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조 차관이 혹시나 3국간 협력 분위기를 깨는 발언을 하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것 같았다.
이날 블링컨 부장관은 한-일 과거사 갈등에 대해 애써 발언을 삼가고 세 나라가 공통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는 “한-일 간에 어떤 긴장이 있더라도, 도전과제들에 대한 두 나라의 공동의 관점은 어떤 차이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며 “우리는 두 동맹국이 가능한 최상의 관계를 갖기를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한-일 과거사 갈등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군사력 팽창이라는 공통 과제에 대처하기 위한 한·미·일 삼각 안보체제 강화가 훨씬 중요하니, 과거사 갈등은 봉합을 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블링컨 부장관은 이날 한·미·일 3국 회동에서는 조 차관의 과거사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별도로 열린 한-미, 미-일 양자 회동에서는 이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전해진다. 에번 메데이로스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도 24일 기자들과 콘퍼런스콜에서 “우리는 (한·일에) 역사 문제를 정직하고 건설적이며 솔직한 방법으로, 치유를 촉진할 뿐 아니라 최종 해결에 도달하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고 밝혔다. 미국은 한·일 정상의 방미를 계기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것을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일본 정책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재팬 핸들러’인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일본 석좌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행정부와 의회, 그리고 나를 포함한 전문가들이 한국은 물론 일본 쪽에도 더 전향적인 태도를 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며 “왜냐하면 한-일 긴장이 현재 삼각 안보협력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이 일본 쪽에 요구하는 강도는 한국이 원하는 수준과는 적지 않은 괴리가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처음으로 ‘인신매매’의 희생자로 표현한 데 대해, 미국 쪽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쪽은 국제조약상 인신매매라는 정의에는 성적 노예도 포함하고 있으며, 미국 연방법에서는 인신매매의 주체에 국가도 포함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이는 인신매매는 민간업자들이 행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한국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린 석좌는 “미국 정부는 이 표현을 통해 일본 정부가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해석하지만 한국 언론들에선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는 한국 쪽이 골대를 옮기는 것”이라고 말해, ‘인식의 한계’를 드러냈다. 이런 인식의 차이 때문에 미국의 과거사 봉합 시도는 단기간에 성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역사 수정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아베 총리를 미국 의회가 일본 총리로는 사상 처음으로 합동연설에 초청하고 백악관이 이에 동의한 것은 미국의 변화된 기류를 느끼게 한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은 “미국은 지금 일본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과 안보 협력 강화를 원한다”며 “그래서 과거사 문제는 크게 중요치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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