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방미 뜻 보이다 돌연 거절
‘오바마와 단독회담’ 밝힌 미 곤혹
의제 조율 과정서 이견 못좁힌 듯
‘오바마와 단독회담’ 밝힌 미 곤혹
의제 조율 과정서 이견 못좁힌 듯
사우디아라비아의 살만 빈 압둘아지즈(79) 국왕이 이번주 미국에서 열릴 예정인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의에 불참하기로 해 미국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사우디의 아딜 주바이르 외교장관은 10일 성명에서 “인도적 지원을 위한 예멘과의 5일간 휴전과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살만 국왕이 정상회의에 참석할 수 없다”고 불참 이유를 설명했다. 살만 국왕의 사촌인 무함마드 빈나이프(55) 왕세자 겸 내무장관이 대표단을 이끌고, 살만 국왕의 아들인 무함마드 빈살만(29) 부왕세자 겸 국방장관이 참석한다.
그러나 살만 국왕이 지난주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워싱턴 방문 뜻을 내비치고, 이어 8일 백악관은 살만 국왕이 오바마 대통령과 단독회담도 할 것이라고 밝힌 터여서, 회담 의제 조율 과정에서 이견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회담 의제 조율에 관여한 한 중동 국가 관리의 말을 인용해 “이란과 시리아 문제에서 미국과 이견을 좁히는 데 진전이 없자 살만 국왕이 미국까지 갈 가치를 못 느낀 것 같다”고 보도했다. 사우디는 미국이 이란과 핵협상을 하는 것을 비판해왔으며,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퇴진시키기 위해 미국이 더 공세적 정책을 펼 것을 주장해왔다.
이로써 걸프협력회의 6개국 가운데 이번 정상회의에 국왕이 직접 참여하는 나라는 카타르와 쿠웨이트 2개국뿐이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오만의 국왕은 건강상 이유로 이미 불참을 통보했으며, 바레인도 국왕 대신 왕세자가 참석할 예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해온 이번 정상회의가 회담이 열리기도 전에 빛이 바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는 6월말 이란과의 핵협상 최종 합의를 앞두고, 걸프 국가들에게 추가 방위 공약을 내밀면서 핵협상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 내고자 이번 회의에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걸프 국가들이 미국 쪽에 한국·일본처럼 구속력 있는 상호방위조약을 맺을 것을 요구한 반면에, 미국은 대통령 성명이라는 구속력이 떨어지는 방위 공약을 천명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또 걸프 국가들은 F-35와 같은 최첨단 무기들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미국은 이스라엘을 의식해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카림 사자드푸어는 <뉴욕 타임스>에 “사우디는 중국이나 러시아와 (미국을 대신할) 전략적 협력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며 “살만 국왕의 방미 불참 결정이 사우디가 미국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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