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3일 미국과 중국간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는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한국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한국의 줄서기를 압박하고 나섰다.
러셀 차관보는 이날 워싱턴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서 이 연구소와 한국국제교류재단 주최로 열린 세미나에서 남중국해 분쟁에 대한 한국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한국은 국제질서에서 주요 주주로서의 역할과 더불어 무역국가와 법치국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 한국은 국제시스템에서 번창해 온 국가”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이 이번 영유권 분쟁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할 더 많은 이유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원칙과 법치를 위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고위 관료가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해 한국의 동참을 공개적으로 촉구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을 놓고 미-중 간에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받아들여진다. 러셀 차관보의 이날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한국이 이 문제에 대해 현재보다 더 강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것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미 두 나라는 현재 정상회담 뒤 나올 공동성명 문구를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남중국해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지지한다는 원론적인 태도를 표명해왔다. 지난해 10월 열린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 때 나온 공동성명은 “양국 장관들은 남중국해에서 평화와 안정의 유지, 해상 안보와 안전, 그리고 항해의 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며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 중국이 남중국해 행동선언(DoC)을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이행해야 하고, 의미있는 행동규약(CoC)을 조기에 채택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자국과 동맹·우방국들의 주요 해상교통로인 남중국해 주변에서 항해의 자유를 핵심적인 국가이익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4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 때 일본 자위대가 전세계에서 미군을 지원할 수 있도록 미-일 상호방위협력지침을 개정했는데, 주요 목적이 남중국해 분쟁에서 일본의 역할 확대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군사적 지원을 요구한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의제에 올라갈 것으로 보여, 어떤 논의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한 외교 소식통은 “러셀 차관보의 발언은 대외적 성명 등을 낼 때 한국이 더 나아간 입장을 표명해달라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러셀 차관보는 또 이날 연설에서 박 대통령의 방미 때 양국의 글로벌 현안 협력이 주요하게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표적인 협력 사안으로 기후변화·사이버 안보·개발 지원 등과 함께, 한·미·일 삼각안보협력과 아시아 다자기구 강화를 꼽았다. 그는 “한·미·일은 해양 안보와 북한 위협 같은 역내 이슈뿐 아니라 다양한 글로벌 현안들에 대해 공조할 수 있다”며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 아시아 다자기구들은 역내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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