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유서깊은 흑인교회에서 총격을 가해 9명을 숨지게 한 딜란 루프(21)가 백인 우월주의자라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경찰과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해 총격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루프는 17일 저녁 8시께 ‘이매뉴얼 아프리카 감리교회’에 도착해 성경 공부를 하던 신자들 옆에 앉았다. 1시간가량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일어나 총을 꺼내 들었다. 한 신자가 그를 제지하자, 그는 “당신들은 우리 여성들을 성폭행했다. 우리나라를 차지했다. 당신들은 이 나라에서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하이디 베이리치 미국 남부빈곤 법센터 국장은 “흑인 때문에 심각한 피해를 보는데도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백인들이 이런 말을 한다”며 전형적인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말이라고 설명했다. 루프의 현주소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작은 마을로 주민 거의 전부가 흑인들이다.
루프는 페이스북에 백인 우월주의자임을 보이는 문양의 점퍼를 입고 찍은 사진을 올렸다. 이 점퍼 오른쪽 가슴 부분에는 과거 극단적 인종차별 제도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시행한 남아공과 로디지아(현 짐바브웨)의 국기가 새겨져 있었다.
루프는 고교 1학년 때 중퇴를 해 친구들이 별로 없고 극도로 내성적인 성격인 것으로 전해졌다. 인종차별주의적 발언들을 자주 내뱉었다고 몇몇 친구들은 전했다. 올해 루프가 페이스북 친구를 요청해 다시 만나게 됐다는 조지프 미크는 <뉴욕타임스>에 “그는 인종들이 어떻게 분리돼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다”며 “미친 짓을 할 계획을 하고 있다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미크는 “루프가 올해 생일 때 아버지한테서 받은 돈으로 권총을 샀는데, 문제를 일으킬까봐 내가 총을 빼앗아 숨겨놓기도 했다”고 말했다. 루프는 마약 의존증 치료제를 처방전 없이 소지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적도 있다.
사건 현장인 이 교회는 미국 남부지방에서 처음으로 흑인 신자들을 받아들이고, 1800년대 초반 노예무역의 중심지였던 찰스턴에서 비밀리에 노예 해방 운동을 전개한 곳이기도 하다. 루프는 범행 뒤 자동차로 도주했으나, 한 시민의 제보로 14시간 만에 검거됐다. 미 법무부는 이번 사건을 ‘증오범죄’로 규정하고 수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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