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캔자스주 위치토에 있는 한 총기 상점에서 점원이 고객이 총을 살펴볼 수 있도록 카운터에 있는 총을 꺼내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17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흑인교회에서 백인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청년이 총을 난사해 흑인 신도 9명이 숨지는 등 총기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위치토/EPA 연합뉴스
[국제 초점] ‘총기 규제’ 논란뿐인 미국
탕탕탕. 지난 17일 저녁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유서깊은 흑인교회인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의 평화로운 수요성경공부모임은 순식간에 비명 소리로 뒤덮였다. 9명의 흑인 신도를 살해한 백인 청년 딜런 루프(21)의 손에는 45구경 권총이 들려 있었다. 루프의 삼촌은 언론에 “루프의 아버지가 21살 생일 선물로 준 것”이라고 했다. 루프의 친구는 “루프가 생일 때 부모한테 받은 용돈으로 총기 소매점에서 직접 구매한 권총”이라고 전했다.
찰스턴 총격에 앞선 지난 4월말에도 루프는 체포된 적이 있었다. 새 권총과는 무관했다. 한 쇼핑몰에 대한 접근 금지 명령을 어겼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두달 전, 루프는 같은 쇼핑몰에서 ‘이상한 행동’을 벌여 무단침입 혐의와 함께 처방전 없이 아편과 유사한 진통제 ‘서복손’(surboxon)을 소지한 혐의로 붙잡혔던 터였다.
루프가 세번째로 체포된 지난 18일 오전에는 이전 두번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는 증오범죄, 총격살인 용의자로 도주하다 붙잡혔다.
어떻게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된 전력이 있는 루프가 총기를 구매할 수 있었을까?
개인 무기 보유수 1위 총기살인 1위
마약 전과자에 총 팔아 ‘찰스턴 비극’ 오바마·힐러리 “규제” 각오 다지지만
공화당 잠룡들 참사 하루도 안 지나
수정헌법 2조 ‘무기소유 권리’ 옹호
기소된 중범죄자도 구매 허용 추진 2년전 초등생 20명 참사뒤 규제책
로비에 국회문턱 좌절 ‘총기 천국’으로
얼마나 더 희생돼야 규제 통과될까 ‘총기의 나라’ 미국도 중범죄에 해당하는 혐의로 기소된 사람에게는 총기를 판매할 수 없도록 연방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루프의 마약 소지 혐의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선 경범죄로 분류된다. 그의 ‘전과’는 총기 구매에 하등 문제될 게 없었다. 종종 마약에 취하고 흑인 밀집 지역에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해오던 청년은 ‘합법적’으로 살상 무기를 손에 넣어 9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미국은 이번 사건을 교훈삼아 총기 규제를 강화할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사건 이튿날 굳은 표정으로 “분명한 것은 타인에게 해를 가하려고 마음먹은 누군가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총기를 손에 넣을 수 있었기에 무고한 사람들이 살해당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와 같은 대형 참사가 다른 선진국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언젠가는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이라며 “다른 곳에서는 (이런 대규모 총기사건이) 이런 빈도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며칠 뒤 그는 트위터에 “인구비례로 따져도 총에 맞아 숨지는 미국인이 일본보다 297배, 프랑스보다 49배, 이스라엘보다 33배 많다”고 올렸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도 22일 시카고의 한 행사에서 총기 규제에 대한 보기 드문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가정폭력범이나 정신질환자, 심지어 테러리스트 감시 명단에 올라 있는 사람들이 총기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문제를 놓고 우리가 협력할 수 없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미국 공화당 잠룡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들은 찰스턴 총격사건이 일어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총기 소유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2조를 내세워 ‘무기 소유의 권리’를 옹호하고 나섰다.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과 랜드 폴 상원의원이 그 선두에 있었다. 18일 열린 한 보수단체 모임에서 루비오 의원은 “내가 대통령이라면 수정헌법 2조를 보호할 법무장관을 임명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폴 의원은 “모두가 수정헌법 2조를 지지한다. 대선 후보 모두 우리 편”이라고 강조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몰지각한 행보에 혀를 내둘렀다.
한술 더 떠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는 24일 총기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위스콘신주에서는 충동적 구매 뒤 이상행동을 방지하기 위해 ‘(총기 구매 시점으로부터) 48시간 뒤 총기를 받도록 대기 기간을 두는 법’을 시행하고 있는데, 이를 폐지한 것이다. 공화당이 추진중인 여러 건의 친 총기 법안 가운데는 기소된 중범죄자에게 총기 구매를 허가하는 내용도 있다. 연방총포담당국의 강화된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단서를 달아 1992년 금지된 중범죄자 총기 소유 권한을 복권시키겠다는 의도다. 이 바탕에는 “총기 규제 완화가 안전한 나라를 만든다”는 주장이 깔려 있다.
하지만 최근 미국 내 총기 규제를 옹호하는 폭력정책센터는 2008~2012년 일어난 4만2419건의 총기살인사건을 추적한 결과 이 가운데 1108건만 정당방어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총기 소유가 절실하며 ‘나쁜 사람을 퇴치하기 위해 총이 필요하다’는 총기 소유 옹호론자들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결과였다.
2014년 퓨리서치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 가정의 34%가 총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스위스의 스몰 암스 서베이는 세계 인구의 5% 이하를 차지하는 미국이 세계 민간 보유 총기의 35~50%가량을 갖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미국은 인구당 무기 보유 수도 세계 1위다. 선진국 가운데 총기살인 사망률도 가장 높다.
2년 전 미국은 이번 찰스턴 사건을 막았을 수도 있는 총기 규제의 문턱까지 갔었다. 의회는 모든 총기 구매자에 대한 신원조회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상정했다. 공격용 무기 판매를 금지하고 대용량 탄창을 제한하며, 불법 무기밀매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도 검토됐다. 1968년 총기 등록을 의무화한 이래 가장 과감한 규제 시도였다.
이 법안이 상정될 수 있었던 것은 2012년 12월14일 어린이 20명과 교직원 6명의 희생자를 낸 코네티컷주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의 충격파 때문이었다. 당시 스무살의 범인 애덤 랜자는 6~7살의 아이들을 교실에 가둬놓고 총격을 퍼부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걸 여기에 쏟아붓겠다”고 선언하고, 두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그런데도 이 총기 규제 법안은 상원에서 55명의 찬성표를 얻고 부결됐다. 5표가 부족했다. 막판에 발을 뺀 의원들은 곧 치러질 선거에서 재선이 위태로웠던 인사들로, 미국 로비계의 절대강자 ‘미국총기협회’(NRA)에 무릎을 꿇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의 조사 결과를 보면 당시 미국 시민의 91%가 모든 총기 구매자에 대한 신원조회를 지지하는 상황이었다.
미국총기협회는 1871년 설립된 조직으로, 남북전쟁 뒤 북부 출신 장교들이 병사들의 형편없는 사격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꾸린 단체였다. 이들이 총기 소유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로비를 펼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총기협회는 사격선수와 사냥꾼 등을 대상으로 활동을 펼치며 정부의 총기 규제 움직임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총기 등록법도 지지했다. 이에 반감을 느낀 총기 소유 기본권 활동가들은 ‘총기 소유의 자유는 미국 헌법에서 보장된 권리’라고 설파하며 조직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정치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이들은 1975년 협회의 로비 조직을 꾸리고 이듬해 정치자금 모금조직인 정치활동위원회(PAC)도 만들었다.
이후 이들의 로비는 점점 강력해져 미국 정치판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싱크탱크인 선라이트 파운데이션의 선임 정치학자 리 드루트먼에 따르면, 2012년 공화당 의원의 88%와 민주당 의원의 11%가 미국총기협회의 정치자금을 받은 바 있다. 2013년 임기를 시작한 의원 가운데 51%는 정계 입문 뒤 이 단체로부터 후원을 받은 적이 있고, 47%는 직전 선거 때 자금을 지원받았다. 미국총기협회가 의원들의 등급을 매겨 공개하자, 정치인들은 단체에 밉보이는 일은 하지 않게 됐다.
‘총기 소유자의 천국’이자 ‘총기 피해자의 지옥’ 미국을 만들어낸 실체는 대체 무엇일까?
대부분의 미국인은 미국이 총기 소유가 헌법으로 보장된 나라라고 알고 있다. ‘수정헌법 2조’에 근거해서다. 1791년에 비준된 수정헌법 2조는 “규율있는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 소지 및 휴대에 관한 인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총기 소유 옹호론자들은 이 규정을 목숨처럼 여긴다.
총기 소유는 헌법이 보장한다는 논리는 1960년 법학 교수 스튜어트 헤이스가 처음으로 제창한 것이다. 헤이스는 ‘개인의 총기 소유는 수정헌법 2조에 의해 보호받는 특권이며 민병대에만 적용하려는 과거 법원의 판결은 잘못됐다’는 논문을 냈다. 3년 뒤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범 리 하비 오즈월드는 미국총기협회 간행물에 실린 광고를 보고 우편으로 범행에 사용한 소총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케네디 암살 뒤 오즈월드는 권총을 숨기고 경찰서에 잠입한 잭 루비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이 두 사건은 수정헌법 2조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에 불을 붙였다.
미 연방대법원은 1939년 국가총기법의 합법성을 묻는 ‘밀러’ 사건에서 “수정헌법 2조는 민병대가 무기를 지니도록 하는 원래의 의도라는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최근까지도 대법원은 ‘미국인들이 수정헌법 2조에 의해 총기 소유의 권리를 보호받고 있다’고 직접 판단한 적이 없었다. 입법부도 같은 견해를 보였다. 그런데 2002년 존 애슈크로프트 법무장관은 ‘조지 부시 행정부는 수정헌법 2조가 사실상 총기를 휴대할 수 있는 개인의 원리를 명시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고 시사했다. 반전이었다.
연방대법원은 2008년에야 ‘수정헌법 2조에 의해 적어도 자택 안에서는 자기방어를 위해 총기를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보유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된다’고 판단했다. 2년 뒤에는 “수정헌법 2조가 보장하는 권리는 ‘질서 잡힌 자유’라는 미국의 이념에서 근본적인 것”이라고 판시했다.
문제는 연방대법원이 이달 초 미국총기협회 등이 제기한 개인의 총기 소유 기본권 침해와 관련한 사건의 심리를 거부했다는 점이다. 9명의 대법관 가운데 2명만이 심의를 찬성해 사건은 기각됐다. 전문가들은 대법원의 수정헌법 2조에 대한 해석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뉴질랜드 아라모아나에서 13명이 총기사건으로 숨졌을 때 뉴질랜드는 기존의 평생 총기 허가증을 10년짜리로 바꿨다. 2002년 독일 에르푸르트에서 16명의 희생자를 낳은 총기 참사 뒤 독일은 25살 이하 모든 총기 구매자의 정신감정을 의무화했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는 1996년 36명의 목숨을 앗아간 포트아서 학살 이후 반자동 총기 매매를 금지했으며 정부가 전국적으로 총기 회수 활동을 벌였다. 반면, 미국에선 샌디훅 초등학교 참사 뒤 1년간 총기 규제 대신 총기 소지 권한을 늘리는 법안이 93건이나 통과됐다.
그래서 미국은 안전해졌을까? 많은 이들은 고개를 흔든다. 샌디훅 사건 전 18개월 동안 미국의 학교들에선 17명이 총기사건으로 숨졌다. 전 미국인들을 충격에 빠지게 한 샌디훅 사건 이후 18개월 동안은 41명의 사망자가 보고됐다.
존 하워드 전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는 3년 전 “총기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미국과 극단적으로 다른 길을 걸었던 게 맞았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마약 전과자에 총 팔아 ‘찰스턴 비극’ 오바마·힐러리 “규제” 각오 다지지만
공화당 잠룡들 참사 하루도 안 지나
수정헌법 2조 ‘무기소유 권리’ 옹호
기소된 중범죄자도 구매 허용 추진 2년전 초등생 20명 참사뒤 규제책
로비에 국회문턱 좌절 ‘총기 천국’으로
얼마나 더 희생돼야 규제 통과될까 ‘총기의 나라’ 미국도 중범죄에 해당하는 혐의로 기소된 사람에게는 총기를 판매할 수 없도록 연방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루프의 마약 소지 혐의는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선 경범죄로 분류된다. 그의 ‘전과’는 총기 구매에 하등 문제될 게 없었다. 종종 마약에 취하고 흑인 밀집 지역에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해오던 청년은 ‘합법적’으로 살상 무기를 손에 넣어 9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미국은 이번 사건을 교훈삼아 총기 규제를 강화할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사건 이튿날 굳은 표정으로 “분명한 것은 타인에게 해를 가하려고 마음먹은 누군가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총기를 손에 넣을 수 있었기에 무고한 사람들이 살해당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와 같은 대형 참사가 다른 선진국들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언젠가는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이라며 “다른 곳에서는 (이런 대규모 총기사건이) 이런 빈도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며칠 뒤 그는 트위터에 “인구비례로 따져도 총에 맞아 숨지는 미국인이 일본보다 297배, 프랑스보다 49배, 이스라엘보다 33배 많다”고 올렸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도 22일 시카고의 한 행사에서 총기 규제에 대한 보기 드문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가정폭력범이나 정신질환자, 심지어 테러리스트 감시 명단에 올라 있는 사람들이 총기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문제를 놓고 우리가 협력할 수 없다는 것은 도무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미국은 여전히 총기 규제 여부를 놓고 격한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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