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경찰의 살인·불법행위 등 촬영뒤
고발하자 체포·협박 등 보복 잇따라
경찰, “업무방해” 촬영금지 주장
법원은 “막으면 수정헌법 1조 침해”
고발하자 체포·협박 등 보복 잇따라
경찰, “업무방해” 촬영금지 주장
법원은 “막으면 수정헌법 1조 침해”
지난 4월4일 미국 언론은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찰스턴에서 경찰관의 총을 빼앗아 위협한 흑인 스콧 월터(50)가 백인 경찰 마이클 슬래거가 쏜 총에 맞아 숨졌다고 전했다. 정당방위라고 했다. 페이든 산타나는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아침에 목격한 상황과 전혀 달랐다. 산타나의 휴대폰에는 등을 돌린 채 천천히 도망치던 스콧이 경찰의 총에 맞아 쓰러진 장면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스콧은 경찰의 총을 빼앗지도, 위협하지도 않았다. 산타나가 찍은 영상에는 경찰이 총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스콧의 주검 옆에 내려놓는 장면까지 찍혀 있었다.
산타나는 자신이 현장에 있어서 ‘우려스러운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후 상황은 달랐다. 죽음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것은 산타나 뿐이었다. 망설이던 산타나는 스콧이 죽고 사흘 뒤 영상을 공개했다. 경찰관은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산타나의 진짜 두려움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페이스북에는 ‘페이든 산타나에게 죽음을’ 이라는 계정이 생겼다. 그는 혼자 출퇴근하지 못한다.
경찰이 진압 과정에서 팔로 목을 휘어감아 “숨 쉴 수가 없다”던 흑인 에릭 가너(43)의 죽음을 세상에 알린 것도 뉴욕에 사는 렘지 오타(23)가 찍은 영상이었다. 오타는 사건 직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지만 이젠 더이상 인터뷰에 응하거나 사는 곳을 밝히지 않는다. 마약 매매 등 전과가 있던 오타는 지난 한해 악명 높은 라이커스 아일랜드 감옥을 3번이나 드나들었다. 오타의 변호사들은 그가 뉴욕 경찰의 표적이 돼 명백한 증거없이 2건의 마약 범죄와 무기 소지 혐의가 씌워졌다고 주장한다. 재판은 아직 열리지 않은 상태다.
올봄 메릴랜드 볼티모어에서 경찰관이 차량으로 들이받아 숨진 흑인 청년 프레디 그레이(25)의 죽음의 진상을 밝힌 영상 촬영자 케빈 무어(28)도 체포를 면치 못했다.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그는 당시 경찰이 자신을 위협하기 위해 고의로 체포했다고 믿고 있다. 지역 활동가들은 그가 이후 연락을 끊었다고 전했다.
영국 <가디언>은 미국에서 경찰관들의 불법적 행위 등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고발한 뒤 오히려 경찰 등으로부터 ‘보복’을 당하는 이들의 사연을 15일 자세히 전했다. 언론인 출신 칼로스 밀러가 운영하는 ‘촬영은 범죄가 아니다’라는 웹사이트를 보면, 경찰을 촬영하다가 체포, 폭행 또는 위협을 당했다는 사건이 올해 87건에 이른다. 앞서 미 법무부가 펴낸 퍼거슨 경찰서 조사 보고서는 “(경찰들이) 반복적으로 사람들의 촬영 행위를 막아 수정헌법 1조를 침해했다”고 밝혔다.
경찰들은 시민들의 영상 촬영이 경찰관 직무를 수행하는 데 방해가 되며, 사건의 전체가 아닌 일부를 왜곡된 형식으로 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시민들이 경찰관을 촬영하는 것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논란이 됐던 댈러스 외곽 수영장 파티에서 경찰관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바닥에 내쳐졌던 흑인 소녀 영상도 일부만 편집됐다는 게 경찰 쪽 주장이다. 현장에서는 학생들이 싸우고 인근 주민들이 경찰관의 진압을 촉구하는 등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이에 올초 공화당 소속 텍사스주 하원의원 제이슨 빌랄바는 경찰관 촬영 금지 법안을 제출했다. 산타나의 영상이 공개된 뒤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국 법안을 철회했지만 그렇다고 미국에서 경찰관 촬영 금지 움직임이 사라진 건 아니다. 일리노이주에서는 허가 없이 경찰관들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을 중범죄로 처벌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반면, 코네티컷과 미시시피, 몬태나에서 제출된 ‘시민들의 촬영 권리 보호 법안’은 의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경찰관 촬영이 합법이라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일리노이와 매사추세츠 법원은 ‘시민의 촬영권은 수정헌법 1조에 의해 보호받는다’고 판결했다. 아칸소와 콜로라도, 오레곤에서는 촬영자들을 보호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뉴욕 시민자유연합 등은 시민들이 찍은 영상이 실시간으로 단체 쪽에 보내지도록 하는 앱을 개발해 배포했다. 뉴욕에서는 3만5000명이, 캘리포니아에서 비슷한 앱을 15만명이 다운받았다. 뉴욕시민자유연합 대변인 제니퍼 카니그는 “이제 이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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