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흑인 민권운동 이끌어
1965년 미국 흑인 참정권 운동의 역사를 새로 쓴 ‘셀마 행진’의 상징적 여성 활동가 어밀리아 보인턴 로빈슨이 26일 별세했다. 104살 생일 맞은 지 여드레만이었다.
<시엔엔>(CNN) 방송 등 미국 언론들은 로빈슨이 지난달 쓰러진 뒤 앨라배마주의 몽고메리의 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운명을 달리했다고 전했다.
조지아주 서배나에서 나고 자란 로빈슨은 미국에서 흑인 민권운동이 본격화되던 1960년대 셀마에서 남편과 함께 이 움직임을 이끌었다. 특히 그는 마틴 루서 킹 목사를 셀마로 오도록 설득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활동은 올해 개봉된 영화 <셀마>를 통해 다시 조명 받았다.
로빈슨은 1965년 3월7일 흑인들의 투표를 가로막는 남부 주정부들에 맞서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행진에 나선 흑인 시위대 600여명 중 한명이었다. 이들이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를 건너려고 하자 경찰은 곤봉과 최루탄으로 무자비하게 진압에 나섰고, 역사는 이날을 ‘피의 일요일’로 기록했다. 로빈슨은 이날 경찰의 곤봉에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중년의 가정주부가 죽은 듯 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사진이 신문에 실리자 미국 국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이 사진은 미국인들의 시선을 셀마로 집중시켰다.
그때로부터 정확히 50년이 지난 올 3월7일, 로빈슨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손을 잡고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를 건넜다. ‘셀마-몽고메리 행진’ 50돌 기념행사에서 행렬의 선두에 선 그는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셀마 행진은 1965년 8월 린든 존슨 당시 대통령이 투표 과정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한 연방 투표권법에 서명하는 것으로 이어졌는데, 존슨 대통령은 로빈슨을 이 서명식에 귀빈으로 초청했다.
미 언론은 그가 미국 역사상 의회 선거에 출마한 첫 흑인 여성이었다고도 전했다. 그는 1964년 앨라배마에서 민주당 하원의원으로 출마했는데 당시 11%를 얻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셀마 행진이 있기 전, 남부 지역에서 흑인들의 투표가 연방법으로 보호되기 전이었다.
유족들은 로빈슨의 장례식을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에서 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경찰의 곤봉에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진 로빈슨.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