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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최대 국경일에 ‘삼바춤’이 사라졌다, 브라질에 무슨 일이…

등록 2015-09-06 20:31수정 2015-09-07 15:13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의 의사당 앞에서 8월16일 시위대가 ‘지우마 퇴진’ ‘즉각 탄핵’ 등의 문구를 쓴 대형 펼침막을 들고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브라질리아/AP 연합뉴스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의 의사당 앞에서 8월16일 시위대가 ‘지우마 퇴진’ ‘즉각 탄핵’ 등의 문구를 쓴 대형 펼침막을 들고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브라질리아/AP 연합뉴스
고꾸라진 브라질 경제·정치…호세프 ‘탄핵 민심’ 되돌릴까
9월7일은 브라질이 포르투갈에서 독립을 선언(1822년)한 지 193년이 되는 독립기념일이다. 그러나 올해엔 이 나라 최대 국경일에 화려한 불꽃놀이와 삼바춤 물결만 넘실거릴 것 같지는 않다. 브라질 주요 도시에서 야권이 주도하는 반정부 시위가 예고돼 있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벌써 수차례 벌어진 반정부 시위에선 “호세프(대통령) 탄핵” “정권 퇴진” “부패 척결” “경제 개혁” 등 수위 높은 구호들이 터져나왔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두번째 임기의 취임선서를 한 지 8개월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달 초 브라질의 한 여론조사기관이 공표한 호세프 정부의 ‘국정운영 평가’ 지지도는 문자 그대로 바닥이다. “잘한다”는 응답이 8%로 한자릿수에 그친 반면, “못한다” 또는 “매우 못한다”는 평가가 71%에 이르렀다. 또 응답자 3명 중 2명(63%)은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런 평가는 브라질에서 독재정권(1964~1985년)이 종식되고 민주주의가 회복된 이래 최악이다.

오늘 최대 국경일인 ‘독립기념일’
중도우파 야당, 탄핵시위 주도

2002년 노동자 대통령 선출 이래
4연속 집권 좌파정권 최대 위기

최근 경제위기에 정경유착 추문
호세프 지지율 바닥까지 추락
룰라 전 대통령, 구원투수로 나서

“보수 기득권층의 정권 흔들기”
남미 좌파정부들 우려 속 주시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 부패 추문에 극심한 경제 침체까지

현재 브라질에 닥친 위기는 호세프 개인의 정치적 위기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는 지난해에 상반기에 이어 올해 들어서도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물가는 치솟고, 헤알의 통화가치는 자꾸만 떨어진다. 1990년대 외환위기 이후 20여년 만에 최악의 침체기다. 산업생산은 지난달까지 17개월 연속 감소했다. 농산물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문이 마이너스 성장이다. 이런 부진의 원인으로는 우선 저유가 지속, 원자재값 폭락, 중국발 금융쇼크 같은 외부 악재들이 꼽힌다. 재정정책 실패, 공공부문 개혁에 대한 기득권층의 저항, 지나친 수출 의존과 내수 침체 등 내부적인 문제도 심각하다.

게다가 브라질 국내총생산(GDP)의 13%를 차지하는 남미권 최대 기업인 페트로브라스가 나라 안팎의 정·관·재계와 얽히고설킨 부패 사슬 추문도 감자 줄기처럼 끊임없이 터져나온다. <연합뉴스>는 최근 브라질 일간 <폴랴 지 상파울루>의 보도를 인용해, 페트로브라스가 현재 미국에서 진행되는 해외부패방지법 위반 혐의가 입증될 경우 최소 16억달러(약 1조8900억원)의 벌금을 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마디로 온 나라가 총체적 위기에 빠진 것 같다.

브라질은 남미 최대의 국가이자 세계 7위의 경제대국이다. 인구 규모(약 2억명)와 영토 넓이는 세계 5위다. 농산물, 목재, 석유, 철광, 석탄 등 천연자원도 풍부하다. 2002년 대선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후보가 브라질 헌정사상 첫 노동자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래, 현 호세프 대통령까지 노동자당이 4연속 집권하며 남미 좌파 블록의 수장격 지위를 누려왔다. 노동자당 집권 기간 동안 브라질은 경제성장률, 일인당 소득, 실업률, 빈곤율, 교육·보건 등 정부의 공공지출 등 거의 모든 경제 지표에서 눈부신 발전을 보였다. 과감한 토지개혁과 복지정책, 기간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은 브라질을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바꿔놓았고 4000만명이 절대빈곤선에서 벗어났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도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런 브라질이 요즘 심상치 않다. 최근 10여년 새 신흥경제국 브릭스(BRICS)의 하나로 주목받은 브라질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 야권의 대통령 탄핵 움직임

‘브라질 위기’를 가장 상징적이고도 심각하게 드러내는 게 호세프 대통령 탄핵 움직임이다. 브라질의 제1야당인 사회민주당이 탄핵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유럽을 비롯한 대다수 나라에서 ‘사회민주당’이 중도좌파 정당의 당명으로 쓰이는 것과 달리, 브라질 사회민주당은 시장경제 원리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성향의 중도우파 정당이다. 창당 6년 만인 1994년 대선에서 집권해 2002년 노동자당에 정권을 내줄 때까지 8년간 집권했다. 사회민주당의 아에시우 네베스 대표는 지난해 대선에서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며 호세프 대통령과 맞붙었던 정치인이다. 당시 대선에서 네베스는 ‘(현 집권당인) 노동자당의 무능력과 페트로브라스와의 정경유착 의혹’을 무기 삼아 정권 교체의 당위성을 내세웠으나, 룰라 전 대통령의 후광을 입은 호세프 대통령의 재선을 막지는 못했다.

사회민주당은 그러나 호세프 정부 2기 출범 이후에도 끊임없이 집권당의 부패 의혹을 제기해왔다. 거듭된 탄핵 논란과 정국의 불안정이 위험 수위에 이르자, 급기야 룰라 전 대통령이 ‘호세프 일병 구하기’에 나섰다. 이미 2002년부터 2010년까지 두 차례 대통령을 역임했던 그가 오는 2018년 대선에 다시 출마할 뜻을 내비친 것이다. 그는 지난달 28일 방송 인터뷰에서 “다른 인물이 (노동자당의) 대선 후보로 출마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필요하다면 2018년 대선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야권은 2018년 대선을 기다려야 한다”며 야권 일부의 호세프 대통령 탄핵론을 일축하기도 했다. 퇴임한 뒤로 재임 때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던 룰라 전 대통령이 앞장서 ‘노동자당 정권 살리기’에 나선 모양새다.

브라질 위기를 정치세력의 대립 구도로만 따지면, 노동자와 빈민층 등 사회적 약자 계층을 위한 정책에 무게를 실어온 노동자당과 부유층 및 신흥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회민주당의 힘겨루기로 보인다. 그 핵심 쟁점이 집권 노동자당과 초거대 기업의 정경유착 의혹이다. 노동자당의 거물급 정치인들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페트로브라스 스캔들은 거액의 입찰 비리와 리베이트, 공금 유용과 특혜, 불법 정치자금 제공 등 정경유착 종합세트라 할 만하다. 더욱이 호세프 대통령은 전임자이자 정치적 대부인 룰라 대통령이 집권 중이던 2003~2010년에 페트로브라스 이사회 의장을 역임한 까닭에 의혹과 시비도 클 수밖에 없다.

■ 보수우파의 좌파 정권 흔들기?

그러나 노동자당 정부에 닥친 위기의 진원과 배경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우선 현재 위기가 실체적 근거가 있는지, 아니면 정치적 의도로 조장되거나 부풀려지고 있는지부터가 논란거리다. 남미 최대의 뉴스 전문 방송인 <텔레수르>는 지난달 수차례에 걸쳐 브라질 위기를 집중분석한 보도를 내보냈다. 올해로 창사 10돌을 맞은 <텔레수르>는 (서방의) 강대국이 아닌 남미의 시각으로 남미를 바라보는 것을 표방해, ‘남미의 <알자지라>’란 별칭을 얻은 좌파 성향의 방송사다.

<텔레수르>는 “브라질의 주류 언론들이 지난해 대선 이전부터 페트로브라스 추문을 계속 문제 삼고 있으며, 언론 재벌인 글로부 그룹(Grupo Globo)은 야당 의원들을 업고 공공연히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방송은 “우파 야권의 사정권에는 호세프뿐 아니라 룰라 전 대통령도 들어 있다”며 “룰라 전 대통령은 최근 자신이 페트로브라스 추문에 연루된 것으로 보도한 잡지사의 편집장과 기자 등 5명을 고소했다”고 전했다.

룰라와 호세프 대통령은 자신들의 비리 연루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의혹과 논란만으로도 노동자당은 상당한 정치적, 도덕적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유명 작가이자 룰라 전 대통령의 보좌관을 역임한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리바니우 크리스투는 최근 <로이터> 통신에 “룰라는 브라질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정부를 이끌었지만, 그가 남긴 기반이 그리 탄탄하지만은 않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최근 몇년 새 브라질의 경제성장세가 꺾이고 침체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노동자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이 흔들리고 있다. 상파울루의 도시미화원인 마르케스(39)는 “모든 게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다. 원래 룰라에 대한 믿음이 컸는데, 지금은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호세프 정부에 대한 브라질 야권의 공세는 성공을 거두고 있는 걸까? 실제로는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노동자당을 집요하게 공격해온 야권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부패 혐의로 줄줄이 체포되고 기소되고 있다. 브라질 연방 검찰은 지난달 19일 에두아르두 쿠냐 연방하원 의장(브라질민주운동당)에 이어, 20일엔 브라질 대통령을 역임(1990~1992년)한 페르난두 콜로르 지멜루 연방 상원의원(국가재건당)을 뇌물 수수와 돈세탁 혐의로 연방대법원에 기소했다. 브라질 검찰은 지난해 3월부터 ‘라바 자투(세차용 고압분사기) 작전’을 펴며, 정·재계 비리 의혹을 강도 높게 수사하고 있다.

브라질 노동자당의 정경유착 논란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것은 연방검찰이 정부와 집권당의 손발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노동자당 소속 전·현직 대통령의 비리 혐의 부인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달 17일 사설에서 “호세프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따른 정치적 부담에도 수사를 제한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걸 꾸준히 강조해왔으며, 검찰총장의 임기를 보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또 “호세프 쪽에서 위법 행위를 한 증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며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호세프를 탄핵하는 것은 30년 동안 전진해온 브라질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남미 좌파 정부들의 불안감

브라질의 정치, 경제적 위기는 남미 좌파 정부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브라질 노동자당의 집권과 서민지향적 개혁정책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남미 각국의 보수 기득권층이 좌파 정권 흔들기에 나서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다. 현재 남미에선 전체 12개국 가운데 콜롬비아와 파라과이를 제외한 10개국에서 좌파 정당이 집권하고 있다. 특히 브라질은 좌파 노동자당의 집권 기간에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성공 모델로 꼽혀왔다. 그런 브라질 노동자당의 실패는 2000년대 들어 남미 지역에 형성된 좌파 대세론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

특히 브라질의 정치적 위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라는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다. 남미 반미좌파의 선봉장이었던 우고 차베스의 뒤를 이어 2013년 집권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브라질 위기의 배후로 ‘미국 음모론’을 주장했다. 그는 지난달 23일 현지 텔레비전 연설에서 “브라질에서 앞으로 수개월 안에 쿠데타 위협이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사흘 전인 20일엔 마두로 대통령이 트위터에 “브라질을 사랑하고 브라질과 연대한다”며 호세프 대통령과 룰라 전 대통령에 대한 강한 지지의 뜻을 밝혔다. 이날 아르헨티나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도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남미에서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정권을 흔들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며,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남미의 정치에 개입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지난해 말 브라질 대선 때 호세프 대통령의 재선을 막으려는 보수우파 진영의 시도가 있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 모두, 미국의 브라질 좌파정권 교체 음모론의 구체적인 증거는 내놓지 않았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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