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의 최대 연휴 중 하나인 독립기념일을 이틀 앞둔 16일 저녁 규모 8.3의 강진이 칠레를 강타했다. 지진 직후 발효된 쓰나미 경보에 따라 4329㎞에 이르는 칠레 해안 지역 주민 100만여명이 대피하고, 적어도 5명이 숨진 것으로 보고됐다. 지진은 칠레뿐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비롯해 진앙지에서 약 3380㎞나 떨어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까지 진동이 감지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16일 현지시각 저녁 7시54분께 칠레 중부 도시 이야펠에서 서쪽으로 46㎞ 떨어진 태평양 연안에서 규모 8.3의 강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진원은 25㎞로 보고됐다. 지질조사국은 이번 지진이 페루와 칠레 밑을 지나는 나스카판이 북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남미판과 충돌해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첫 지진 이후 규모 6.3~7.0의 여진이 수차례 이어져 칠레의 밤을 흔들었다.
칠레 국립재난관리청(ONEMI)은 즉각 해안 지역을 포함해 이스터섬과 후안페르난데스 제도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이번 지진으로 진앙지에서 229㎞ 떨어진 수도 산티아고에서도 건물이 심하게 흔들리자 공포에 질린 시민들이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나와 밤을 지새웠다. 한 산티아고 주민은 “미세했던 흔들림이 점점 심해졌다. 12층에 있었는데 (흔들림이) 멈추지 않아 굉장히 무서웠다”고 말했다.
이날 저녁 생중계된 대국민 담화에서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은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자연이 준 가혹한 시련을 마주하게 됐다”며, 피해 지역을 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18일은 칠레의 독립기념일로 크리스마스와 함께 칠레 시민들이 가장 성대하게 기념하는 축제인데, 외신들은 이 연휴를 앞두고 칠레가 대혼란에 빠졌다고 전했다.
더 큰 공포는 쓰나미였다. 칠레에서는 2010년 규모 8.8의 강진으로 520여명이 숨지고 22만여채의 건물이 파손됐는데, 거의 쓰나미에 의한 피해였기 때문이다. 첫 지진으로부터 약 25분 뒤 첫 쓰나미가 칠레 연안 도시 통고이를 덮쳤다. 당국은 북부 항구 도시 코킴보에 이날 밤 최고 4.75m에 달하는 쓰나미가 덮쳐 도시 대부분이 물바다가 됐다고 밝혔다. 17일까지는 2010년과 같은 대규모 피해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미 지질조사국의 수전 허프 박사는 “칠레의 준비 태세와 방재 대책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게 사실”이라며 “그게 차이를 만들었다”고 <에이피> 통신에 말했다.
태평양 지진해일 경보센터는 쓰나미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를 비롯해 뉴질랜드와 피지, 페루와 미국 하와이, 캘리포니아 연안 일부, 러시아, 일본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으나, 전문가들은 대체로 파고가 높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페루는 애초 예비 발령했던 경보를 해제하고, 하와이 등도 쓰나미 경보를 주의보로 내렸다.
칠레 내무부는 이번 지진으로 5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부상당했으며 100만여명이 대피했다고 밝혔으나, 일부 지역의 통신이 두절돼 피해 규모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칠레는 세계에서 지진 활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 중 하나로, 나스카판과 남미판의 경계선에 위치해 있다. 한해 65~80㎜ 이동하는 나스카판은 고정된 남미판에 압력을 가해 이 지역에 대규모 지진이 잦다. 이번 지진은 칠레 역사상 6번째로 강한 지진으로 기록됐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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