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미국·중남미

교황 품으로 달려간 5살 소피 “엄마아빠와 떼어놓지 마세요”

등록 2015-09-24 20:03수정 2015-09-24 21:46

워싱턴 시가 행진 중 깜짝 접근
바리케이드·삼엄한 경비 뚫고 뛰어가

소피가 교황에게 건넨 편지엔
“부모님 체류 합법화시켜 달라” 호소
부모는 멕시코서 온 불법 이민자

교황 “미국, 이민자 받아들이라” 화답
멕시코 출신 불법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다섯살 아이 소피 크루즈가 23일 미국을 방문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한테 편지와 티셔츠를 건네려고 손을 내밀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멕시코 출신 불법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다섯살 아이 소피 크루즈가 23일 미국을 방문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한테 편지와 티셔츠를 건네려고 손을 내밀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을 기다리는 수많은 시민들이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 몰 앞 거리를 가득 메운 23일(현지시각) 오전, 5살 소녀 소피 크루즈는 자신의 키보다 높은 바리케이드와 경찰의 경호망을 뚫고 교황에게 달려갔다. 한 경찰관이 소녀를 제지했다. 돌아가는 듯했던 소녀는 다시 교황을 향해 몇발짝을 옮겼다. 이번엔 검은 양복의 경호원이 가로막았다.

그때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얀 소형차인 ‘포프모빌’ 밖으로 몸을 내밀며 행렬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소녀가 자신에게 올 수 있도록 손짓했다. 경호원은 소피를 번쩍 들어올려 교황의 품으로 데려갔다. 소녀는 교황을 끌어안았고, 교황은 소녀의 볼에 입을 맞췄다. 소녀는 교황에게 준비해온 편지와 노란 티셔츠를 전했다.

소피는 편지에 “프란치스코 교황님, 마음이 슬프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교황님이 대통령과 의회에 말해 우리 부모님(의 체류)을 합법화시켜 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난 매일 그들이 언젠가 부모님을 내게서 떼어갈까 두려워요”라고 자신의 심정을 담았다. 소피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내 친구들과 나는 서로의 피부색이 어떻든 서로를 사랑해요”라고 쓰고, 밑에 교황과 아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있는 그림도 그려 넣었다.

멕시코 오악사카에서 건너와 캘리포니아주에 정착한 소피의 부모는 둘 다 불법 이민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에서 태어난 소피와 언니는 미국 시민이지만, 언제든 부모가 본국으로 송환될 수 있어 불안한 마음을 안고 하루하루를 산다.

물론 이 담대한 행동 뒤엔 어른들의 ‘계획’이 있었다. 로스앤젤레스의 이민자 지원 단체 ‘라 에르만다드’는 앞서 로마에서 비슷한 시도가 성공한 것을 보고 소피를 ‘전달자’로 선택했다. 어른들의 도움과 독려가 있었지만 5살짜리 소녀가 삼엄한 경비를 뚫고 교황에게 달려갈 수 있는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묻는 질문에 소피는 “신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어요”라고 당차게 말했다.

미국 방문 이틀째인 이날 교황은 미국 사회의 첨예한 정치적 쟁점인 불법 이민자나 기후변화 문제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거론했다. 그는 이날 오전 백악관에서 열린 환영 행사에서 본인도 이민자 가정의 아들임을 상기시킨 뒤 “이 나라(미국)는 이민자 가족으로 만들어졌다”고 강조했다. 교황의 아버지는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왔다. 그는 이날 낮 성 마태오 성당 기도회에서도 주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이민자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라”며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이민자들이 미국과 교회를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교황은 “기후변화가 긴급한 문제임을 인정한다면, 더는 미래세대에게 맡겨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교황의 메시지를 일제히 반겼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환경파괴 논란을 일으켜온, 캐나다와 미국을 연결하는 키스톤 송유관 건설 문제에 대해 오랜 침묵을 깨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시엔엔>(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교황이 지지하는 가치가 자신의 이상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며, 특히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소신있고 의미있게 말한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평가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들은 입장이 갈렸다. 가톨릭 신자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교황에 대한 비판을 삼간 채 바실리카 국립대성당에서 열린 시성식에 참석하는 등 낮은 자세를 보였다. 이에 견줘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우리는 자유롭게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며 교황의 입장에 찬성하지 않고 있음을 밝혔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