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병원 같은 층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다 DNA 검사로 확인
어렸을 때 한국에서 헤어진 뒤 미국으로 입양된 자매가 39년만에 미국의 한 병원에서 극적으로 다시 만났다.
신복남(46·미국이름 홀리 호일 오브라이언)씨와 신은숙(44·미국이름 미건 휴스)씨가 미국 플로리다주 새러소타의 닥터스 병원 4층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다 친해진 끝에 서로가 혈육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고 현지 일간 <새러소타 헤럴드 트리뷴>이 10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자매가 미국으로 입양된 것도, 같은 직업을 가진 것도, 또 애초 입양지를 떠나 플로리다의 병원에서, 그것도 같은 시기에 같은층에 일하며 친해지게 된 것도 모두 우연의 연속이었다. 신문은 이 자매의 기막힌 사연을 자세히 소개했다.
부산 출신인 복남씨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 입양된 기억을 어렴풋이 간직하고 있었다. 친어머니는 너무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났고, 알콜 중독자였던 아버지는 의붓어머니를 들였다. 그러나 부모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날 밤 의붓어머니가 복남씨와 두살 터울의 이복 여동생 은숙씨만 데리고 한밤중에 집을 나와버렸다. 의붓어머니는 자매의 양육을 포기하고 보육원에 맡겼다. 자매에게는 단 한명의 피붙이도 없는 삶이 시작됐다. 아버지는 철길에서 사고사를 당한 터였다.
동생 은숙씨가 5살이던 1976년에 먼저 미국 뉴욕주 킹스턴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이어 1978년에는 9살이던 복남씨가 미국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의 한 가정으로 입양됐다. 자매는 광활한 미국 땅에서 매우 가까운, 300마일(약 480km) 거리에 떨어져 자랐지만, 꿈에도 그런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복남씨의 양부모 가정은 유복했고 북적거렸다. 자기 말고도 여러 나라에서 입양한 형제자매만 6남3녀나 됐다. 그러나 복남씨는 한시도 혈육을 잊을 수 없었다. 어느날 잠자리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깨어나 양부모에게 말했다. “아빠는 돌아가셨고, 여동생이 한명 있어요. 그를 찾고 싶어요.”
그때부터 복남씨의 양부모는 입양한 딸의 혈육을 찾기 위해 한국을 비롯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자매의 생물학적 친연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하지만 복남씨는 “내 마음 속으론 여동생이 어딘가에 반드시 살아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고 <새러소타 헤럴드 트리뷴>에 말했다.
자매의 상봉은 기적처럼 우연히 다가왔다. 복남씨는 1991년 버지니아주에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 사설요양원에서 일하다, 지금은 이혼한 전 남편을 따라 2005년에 플로리다주 새러소타로 왔다. 그 곳에서 경력을 쌓은 뒤 올해 1월 닥터스 병원에 일자리를 얻게 됐다.
동생 은숙씨는 뉴욕주 킹스턴의 입양가정에서 살다가, 1981년 양아버지의 건강 문제로 온 가족이 플로리다주 베니스로 이사했다. 새러소타와는 불과 30km 거리였다. 자매의 상봉 가능성이 높아진 건 은숙씨도 2002년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면서였다. 여러 병원에서 일하던 은숙씨는 동료 간호조무사의 추천으로 올해 3월 새러소타의 닥터스 병원에 취업했다. 언니 복남씨보다 두 달 뒤였다.
이 과정에도 극적인 우여곡절이 있었다. 병원 컴퓨터의 채용 프로그램에 은숙씨의 영문 이름인 미건(Meagan)에서 철자 ‘e’가 빠진 채 입력되는 바람에, 하마터면 닥터스 병원 취업이 무산될뻔 한 것이다. 은숙씨는 동료의 도움으로 막판에 취업 인터뷰를 통과한 뒤, 마침 복남씨와 같은 4층에 근무하게 됐다.
한국 출신의 간호조무사 2명이 같은 병원에서 일하게 된 인연은 환자들 사이에서 먼저 화제가 됐다. 복남씨는 “한 환자가 내게 한국 출신의 또 다른 간호사가 있는데,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좋겠다고 알려 주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복남씨와 은숙씨는 함께 점심을 먹고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급속히 친해졌다고 한다. 마침 한국 성이 같다는 걸 알게 된 복남씨는 은숙씨에게 혹시나 싶어 유전자 대조를 제의했다. 둘은 캐나다에서 디엔에이(DNA) 검사 장비를 사들여 타액을 채취한 뒤 캐나다의 검사기관에 보냈다. 그리고 지난 8월17일, 복남씨는 둘의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이메일 답변을 받았다.
복남씨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너무 흥분돼 떨렸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복남씨는 곧바로 은숙씨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마침 환자를 돌보던 은숙씨도 “홀리(복남씨)에게 소식을 들은 뒤 내 첫 반응은 ‘하느님, 이럴 수가!’였다”고 말했다. “충격이었어요, 내게 언니가 있다니, 한순간 멍해졌지요.”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도 없었던 복남씨는 갑자기 두 조카의 이모가 됐다. 혼자서 지내던 휴일의 일상도 이전과 달라지게 됐다.
지구상 70억명 인구 중에, 40년 전에 헤어진 고아들이 이역만리에서 똑같은 직업을 갖고 같은 병원에서 일하다 다시 만나게 된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새러소타 헤럴드 트리뷴>이 던진 질문이다. 은숙씨를 닥터스 병원에 추천해 결과적으로 자매가 다시 만나는 다리를 놓아준 미국인 동료는 “모든 일들이 둘이 만나는 쪽으로 일어났고, 그 확률은 기적이나 다름 없었다”며 “지금도 (극적인 상봉을) 믿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복남씨는 은숙씨의 팔짱을 꼭 낀 채 “글쎄요, 내가 살면서 좋은 일을 해서 이런 기적이 온 것 같아요”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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