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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미 공화당 쥐고 흔드는 ‘프리덤 코커스’

등록 2015-11-01 20:10수정 2016-04-18 23:04

미 공화당내 강경 보수파 모임
민주당과 비타협적 노선 고수
극단적 감세·작은 정부 지향
올초 창립 소속의원 33~40명 불과

베이너 의장 압박 사퇴 이끌고
후임 물망 매카시 의원 주저앉혀
‘캐스팅보트’ 무기 공화당 흔들어
당내 “운영 능력 깎아먹어” 반발도
9월25일, 미국 내 실질적인 권력 서열 3위인 존 베이너(66) 의회 하원의장이 전격 사임을 발표했다. 4년9개월간 공화당의 선두에서 정부 지출을 삭감하고 감세정책 유지를 위해 뛰었으며 쪽지예산도 폐지했던 화려한 날들을 떠올린 것일까? ‘울보 베이너’라고 불릴 만큼 공개석상에서 자주 눈시울을 붉혀온 그는 이날도 눈물을 훔쳤다.

베이너의 ‘깜짝 사임’ 뒤에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 공화당 내 강경 보수파들의 모임 ‘하원 프리덤 코커스’(house freedom caucus)다. 이들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한 이란 핵 합의를 막아내지 못했다며 베이너를 공격했다. 또 여성의 낙태권을 지지하며 지원해온 비영리단체 ‘플랜드 페어런트후드’(Planned Parenthood)에 대한 연방정부의 자금 지원 중단을 요구하며 베이너를 압박했다. 이를 2016년 회계연도 연방예산안과 연계해 정부 셧다운(잠정폐쇄)까지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미 언론은 이 사건이 베이너가 사퇴를 결정한 직접적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7월에는 프리덤 코커스의 창립 멤버인 마크 메도스 의원(노스캐롤라이나)은 베이너 의장의 해임 결의안을 제출했다. 베이너가 오바마 정부에 맞서 싸우기는커녕 되레 협조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결의안은 표결에 부쳐지지 않았지만 당내 보수파의 강력한 ‘쿠데타’ 의지를 드러내기에는 충분했다.

베이너가 10월30일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히자 많은 사람들의 눈은 ‘넘버 2’ 케빈 매카시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에게로 쏠렸다. 그가 베이너의 뒤를 이어 새 하원의장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화당 내 하원의장 후보를 뽑는 비공개회의가 열리기 직전 매카시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경선 포기를 선언했다. “나는 적임자가 아니다”라는 것 외에 구체적인 사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가 앞서 한 인터뷰 발언이 발목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2012년 리비아 무장단체가 벵가지의 미국영사관을 공격해 미국인들이 숨진 사건을 조사하겠다고 꾸린 ‘벵가지 특위’가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게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민주당은 물론 일부 공화당 의원들도 매카시가 출마하면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했다. 공화당 쪽 목소리는 프리덤 코커스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들은 매카시가 베이너와 함께 민주당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동료들로부터 하원의장직 출마 권유를 받아온 하원 예산위원장 폴 라이언은 프리덤 코커스를 비롯한 당내 주요 그룹들의 지지를 얻는 경우에만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며칠 뒤 베이너 해임 결의안을 냈던 메도스는 “프리덤 코커스 회원의 3분의 2가 라이언을 지지하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라이언한테서 오바마의 이민개혁법안 반대와 당내 평의원들의 입지 강화를 약속받았다고 했다. 프리덤 코커스의 ‘인가’를 받은 라이언은 29일 공화당 후보로 하원의장에 당선됐다.

프리덤 코커스는 이번 미국 하원의장 교체 과정에서 명실상부한 ‘킹 메이커’로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워싱턴 정가를 요동치게 하는 이들의 ‘능력’에 비해 이들의 실체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의 정확한 규모도 확인되지 않아 미국 언론이 제시하는 소속 의원의 수는 33~40명으로 제각각이다.

공화당 내 강경보수파가 세력화에 나선다는 소식은 올해 1월 미국의 온라인 정치매체 <내셔널 저널>에 의해 처음 알려졌다. 당시 이 매체는 공화당 내 하원 보수파 모임인 ‘공화당 연구위원회’(Republican Study Committee) 회원들 가운데 모임의 방향에 불만을 품은 일부가 짐 조던(오하이오) 전 연구위 대표를 중심으로 새로운 모임을 결성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1973년에 세워진 공화당 연구위는 172명의 공화당 의원이 적을 두고 있는 보수 주류 계파 모임이다.

1월26일 프리덤 코커스는 창립을 선언했다. 조직의 대표인 조던이 당시 공개한 강령을 보면, 프리덤 코커스는 “정부가 자신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수많은 미국인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는 모임”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다. 또 “우리는 열려 있고 책임감 있으며 제한적인(작은) 정부와 헌법·법치를 지향하며 모든 미국인의 자유와 안전, 번영을 증진할 수 있는 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구성 초부터 30여명의 회원을 보유했다고 알려졌지만 프리덤 코커스는 이날 조던을 비롯해 메도스와 믹 멀베이니(사우스캐롤라이나) 등 9명의 발기인만을 공개했다.

프리덤 코커스는 미국 내 강경보수주의 운동 ‘티파티’와도 맥을 같이한다. 이들은 결성 뒤부터 강경 보수의 목소리를 높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이민개혁법안을 위헌이라고 비난했고, 수출입은행 재승인은 ‘정실 자본주의’의 표본이라며 반대했다. 7월 이란 핵협상이 타결되자 이들은 “오바마 정부가 이란에 테러리즘 지원금 1억달러를 쥐여주고, 이란이 핵폭탄을 개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면서 의회에 합의안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프리덤 코커스를 가장 잘 드러내는 특징은 두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민주당과의 비타협적인 노선을 고수하는 것이다. 이런 탓에 이들은 “절대 안돼 코커스”(hell no caucus)라고 불리기도 한다. 둘째로는 극단적인 감세 정책과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공화당 주류 보수 역시 감세와 작은 정부를 추구하지만 프리덤 코커스는 주류가 때때로 기회주의적이라고 비판한다. 따라서 공화당 강령을 더 철저하게 준수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예산 전쟁에서 이들이 주요하게 공략하는 건 사회복지 예산 축소였다.

올해 초엔 미 국토안보부(DHS)가 2015년 회계연도 예산안과 이민개혁법안을 연계해 상정하자 프리덤 코커스가 주축이 되어 반대표를 던졌다. 시한을 넘기면 국토안보부가 셧다운되기 때문에 상원은 부랴부랴 국토안보부 예산안 통과 시한을 연장하는 수정안을 만들어 하원에 보냈고, 하원은 시한 만료 2시간 전에 간신히 데드라인을 늘릴 수 있었다. 지난주 2016년 회계연도 예산안도 이들의 반대로 막판까지 실랑이를 벌이다 베이너가 의장직에서 물러나는 마지막 날 백악관과 합의해 연방정부 셧다운을 피할 수 있었다. <뉴욕 타임스>는 이 ‘뉴 라이트’ 집단이 애초 목표대로 정부재량 지출을 떨어뜨리는 데도 성공했다고 전했다.

246명의 하원의원이 있는 공화당에서 40명 안팎인 프리덤 코커스가 어떻게 몸통을 흔드는 꼬리가 될 수 있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모두 435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미국 하원에서 법안을 통과하거나 막기 위해 필요한 과반은 218명인데, 만일 최소 33명으로 파악되고 있는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들이 공화당 지도부에 반하는 투표를 할 경우 공화당은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아무리 다수당일지라도 이들이 반대한다면 하원의장도, 법안도 통과할 수 없다는 뜻이다.

막강한 캐스팅보트를 쥔 프리덤 코커스의 남다른 일 추진 방식도 이들에게 큰 힘으로 작용했다. 하원의장 선거 때 이들은 A4 용지 3쪽짜리 질문지와 함께 하원 운영 개선방안을 담은 3쪽짜리 의견서를 출마 후보들에게 제시했다. <폴리티코>가 입수해 보도한 문서를 보면, 프리덤 코커스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주요 정책의 방향에 대한 입장과 민주당과의 협상 절차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 보수파의 의견을 제대로 대변할지 등 21개의 질문을 공세적으로 던졌다. 하원의원들이 직접 자신이 속한 상임위원장을 선출할 수 있는 권한과 함께 상임위원장이 반드시 당론을 따라야 한다는 의무조항 폐기 등 지도부의 권한을 대폭 축소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상임연구원 세라 바인더 조지워싱턴대 정치학 교수는 <워싱턴 포스트> 기고 글에서 “프리덤 코커스가 공화당을 인질로 삼았다”고 표현했다. 그는 이들이 계속 공화당을 볼모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면 하원은 마비될 것이라며 공화당 하원이 딜레마에 빠졌다고 덧붙였다.

이념적으로 보면 이들은 공화당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축에 속한다. 퓨리서치센터가 최근 확인한 회원 36명의 기명투표를 기반으로 집계한 이념적 성향지수를 보면 프리덤 코커스 회원들의 평균 지수(+0.659)는 나머지 공화당 의원들의 평균(+0.455)보다 훨씬 높아 그만큼 더 보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적일수록 -1에, 보수적일수록 +1에 가깝도록 지수를 매긴 방식이었다. 모임 내 가장 ‘진보적’인 회원으로 꼽힌 스티브 피어스 의원(뉴멕시코)도 나머지 공화당 하원의원들의 평균보다 더 보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당 정책에 보수성을 더하는 것과 함께 프리덤 코커스의 주요한 목표인 ‘당 지도부 권력 분산’ 움직임은 이들의 짧은 의회 경력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36명 가운데 72%인 26명이 2010년 이후에 당선됐는데, 바인더 교수는 이들이 전통적으로 서열이 높은 의원들에게 유리한 하원 투표 방식에 휘둘리는 것에 환멸을 나타내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분석했다.

이밖에 프리덤 코커스 회원들의 특징을 보면 대부분 남부와 로키산맥 서부의 교외 또는 준교외 지역 출신의 50대 백인 남성들로 구성됐다는 점이다. 백만장자 신시아 러미스 의원(와이오밍)이 유일하게 알려진 여성 멤버다. 또 프리덤 코커스 회원들은 동료 의원들보다 평균적으로 부유하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2013년 ‘책임정치를 위한 센터’가 낸 보고서에 따르면, 프리덤 코커스 회원들의 그해 평균 자산은 500만달러로 조사돼, 100만달러로 집계된 상·하원 동료의원들의 평균 자산보다 월등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논란을 몰고 다니는 프리덤 코커스 회원들에 대한 지역 유권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뉴욕 타임스>는 최근 5명의 프리덤 코커스 소속 의원들의 지역에서 공화당 지지자들의 반응을 보도했는데,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지난해 당선된 버지니아주의 데이브 브랫 의원 지역의 유권자들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대변한다”고 말했다. 조지아주에서 당선된 조디 하이스 의원 지역 주민들도 비슷했다. 하이스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총기 규제를 제한하는 수정헌법 2조를 지지하고, 기독교에 기반한 정책 등을 펼쳐 시골 사회가 믿는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는 발언들이 잇따랐다.

반면, 공화당 내에서는 프리덤 코커스가 공화당의 하원 운영 능력을 깎아먹고 있다는 반발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프리덤 코커스에서 탈퇴한 톰 매클린톡 의원(캘리포니아)은 “프리덤 코커스가 다수당이 하원의장을 선택하고 어떤 법안을 투표에 부칠지 결정해온 오랜 관례를 깼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들의 행동이 “하원의 정치적 무게중심을 좌측으로 옮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다음 선거 때 공화당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프리덤 코커스가 계속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주장과 행동을 이어가면 오히려 거센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당장은 미국 권력 서열 3위의 하원의장도 선택할 수 있는 이들의 입김에 따라 공화당은 더 오른쪽으로 향하고,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두고 공화당과 백악관의 충돌도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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