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덴마크 법의학자 등 참여
43년전 망명 출국 하루전 사망
칠레, 2013년 조사에선 못밝혀
43년전 망명 출국 하루전 사망
칠레, 2013년 조사에선 못밝혀
“내 발은 꿋꿋이 땅을 밟고 서 있고/ 내 손은 길에서 편지를 쓴다/ 나의 삶 속에서 나는 항상/ 동지와 있거나 적과 맞서고 있거나/ 내 입에 너의 이름과/ 한 번도 네 입을 떠난 적이 없었던/ 입맞춤 하나를 지니고 살리라.” (‘길 위에서의 편지’ 중에서)
43년째 독살설이 끊이지 않는 칠레의 민중시인이자 사회주의 정치가 파블로 네루다(1904~1973)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이번엔 풀릴까?
캐나다 맥마스터대학의 고대 디엔에이(DNA) 센터와 덴마크 코펜하겐대 법의학부 전문가들로 짜여진 국제조사팀이 노벨문학상(1971년) 수상자인 네루다의 사인을 가리기 위해 유해를 정밀조사할 계획이라고 <에이피>(AP) 통신이 24일 보도했다.
조사팀은 네루다의 유해 가운데 뼈와 치아에서 네루다를 죽음으로 몰아간 병원균 박테리아를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지난해 칠레 정부는 “네루다의 죽음에 제3자가 개입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더 자세한 조사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앞서 2013년 칠레 정부는 유족의 요구로 네루다의 유해를 조사했으나 뼈에서 독 성분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이번 조사팀은 “(네루다의 유해에서) 박테리아 디엔에이의 조각들을 추출해 불순물을 제거하고 농축하는 기술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젊은 시절 네루다는 감성이 풍부한 연시를 주로 썼으며, 이미 스무살 때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로 유명작가가 됐다. 그는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영사로 있던 1930년대 후반 프랑코 독재와 스페인 내전을 몸소 겪으면서 사회주의자로 변신했다. 귀국한 뒤인 1945년 칠레 공산당 소속으로 상원의원에 당선됐으나, 우파 정부가 공산당을 불법화하자 은신 끝에 한때 이탈리아로 망명하기도 했다. 네루다가 주인공인 영화 <일 포스티노>가 이때를 배경으로 한다.
네루다는 1970년 대선에서 공산당 후보로 지명됐으나 절친한 벗 살바도르 아옌데에게 후보직을 양보했으며, 아옌데가 당선되자 그 정부에서 프랑스 대사로도 일했다. 그러나 1973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키자 아옌데가 항복을 거부하고 자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네루다는 큰 충격을 받고 망명하려 했지만 출국 하루 전에 갑자기 사망했다. 당시 군사정권은 네루다가 전립선암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발표했지만 군부가 그를 독살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파블로 네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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