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서도 반테러 법안이 국가권력의 시민권 침해에 대한 우려로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특히, 유엔과 시민단체들이 인권침해와 민주주의 후퇴 가능성을 지적하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최근 브라질 보수 우파가 다수인 상원에서 격론 끝에 통과된 테러방지법안이 시민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고 남미 위성방송 <텔레수르>가 27일 보도했다. 유엔 인권사무소 남미 지역 담당관인 아메리고 잉칼카테라는 “법안의 일부 조항과 정의들은 지나치게 막연하고 모호해서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법안은 브라질노동자당 소속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의 서명만 남겨두고 있다.
브라질의 반테러 법안은 ‘테러 행위’를 “정치적 극단주의, 종교적 불관용, 인종·민족·성·외국인에 대한 편견 등을 바탕으로, 폭력이나 다른 심각한 위협을 통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위반자에게는 최고 30년 징역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유엔 인권 담당관은 법안이 포괄적이고 막연한 단어들로 쓰인 탓에 정부 당국이 시민들의 사회적 항의 행동들을 제약하고 범죄로 낙인 찍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브라질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일제히 반테러 법안의 악용 가능성을 경고하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브라질 최대의 시민운동단체인 ‘땅이 없는 소작인 운동’(MST)는 성명을 내어 “이 법안이 보수파들이 다양한 사회운동단체들의 합법적 시위를 탄압하는 데 쓰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브라질의 대표적 인권단체인 코넥타스를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들도 지난 25일 공동성명에서 “문제의 법안은 사회적 권리를 위해 싸우는 단체와 활동가들을 불법화하려 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라고 비판했다.
지우마 호세프 정부가 입안한 이 법안은 미국이 주도한 반테러 기구인 ‘자금세탁에 대한 금융조처 태스크포스(FATF, 자금세탁방기기구)’의 압력에서 비롯했다고 <텔레수르>는 전했다. 호세프 정부가 출범하기 한 해 전인 2010년, 이 기구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앞두고 브라질 정부에 강력한 반테러법을 신설할 것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냈다는 것이다. 현재 34개국이 가입한 자금세탁방지기구는 지침을 따르지 않는 회원국 정부에 경제 제재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지난주 상원 투표가 진행되는 동안 히카르두 베르조이니 치안장관은 의원들에게 이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브라질이 자금세탁방지기구의 경제 제재 결의에 직면할 수 있다고 강한 어조로 호소했다고 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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