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뤼도 캐나다 총리
“트뤼도는 새로운 ‘정치 크러시’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한 관료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에 대한 기대감을 ‘특정인의 매력에 이끌리는 현상’을 의미하는 ‘크러시’라는 단어로 드러냈다. 정치 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도널드 트럼프 등 보수적 정치인들에게 지쳐있는 미국인들이 ‘진보적이면서도 신선한’ 트뤼도 총리의 방미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8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지난해 10월 총선에서 중도 좌파 성향의 자유당을 승리로 이끈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10일부터 3일간 미국을 방문한다.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다양한 문화를 공유해 온 캐나다이지만, 총리가 직접 미국을 방문하는 것은 1997년 이후 19년 만의 일이다. 트뤼도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기후변화·난민문제 등 좌파적 의제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미국 국가안보회의(NSC)의 마크 파이어스타인 서반구담당 선임보좌관은 “두 행정부가 직면한 의제들 중에 많은 것들이 일치한다. 양국 정상이 함께 논의하면서, 동시에 관계를 넓혀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워싱턴 정가는 이번 트뤼도 총리의 방문을 극단적 포퓰리즘과 저질적인 비방전으로 점철된 미국 정치의 ‘해독제’로 여기는 분위기다. 취임 초반 정치적 능력보다는 수려한 외모로 주목을 받아온 트뤼도 총리는, 취임 뒤 자신의 좌파적 의제들을 공론화시키며 이목을 끌었다. ‘지금은 2015년’이라는 이유를 들며 내각의 절반을 여성에게 할당했으며, 종교적 소수파인 시크교도 출신을 국방장관에 임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특히 그의 정치적 슬로건인 ‘따스한 길’처럼, 약 2만5000명의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인 것은 반 이민 정서를 주도하는 미국 보수 정치인들에게 큰 위협이 됐다. 지난 2일 미국 공화당의 ‘슈퍼 화요일’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압승을 거두자, 한때 구글 누리집에서는 ‘캐나다 이주’라는 검색어가 상위권을 차지하기도 했다. 11일 미국의 아메리칸 대학에서 예정되어 있는 트뤼도 총리의 연설은 공지한 지 30분 만에 300여명의 신청자가 몰리는 등 열띤 분위기를 보였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진보적이면서도 신선한’ 캐나다 총리의 방문는 미국인들의 관심을 미국 대선에서 다시 오바마 행정부로 돌리게 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가 대선 경선에서 압승하며 이목을 끄는 시기에, 오바마 대통령은 트뤼도 총리의 방미를 자신의 진보적 영감을 상기시킬 기회로 삼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역사학자인 윌리엄 실은 “백악관에서 일어나는 일 중 우연한 일은 없다. 트뤼도 총리와의 저녁 만찬 역시 백악관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일정일 것”이라 분석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역시 트뤼도 총리의 방문이 트럼프의 반이민 정서와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극우주의자들을 두려워하는 미국인들에게 잠깐의 위안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트뤼도 캐나다 총리
9일(현지시각)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가족들이 미국 워싱턴 앤드류 공군기지에 도착하고 있다. 캐나다 총리의 미국 국빈 방문은 1997년 이후 19년 만이다. 워싱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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