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61살. 일반적으로 은퇴할 시기로 여겨지는 나이가 된 게리 리스는 이달 초 대학 졸업장을 받았다. 1970년대 마지막 한 학기를 남겨두고 대학을 그만둔 지 40여년 만이다. 오랜 세월을 돌아 다시 대학으로 간 것은 ‘학위가 조금이라도 구직 활동에 보탬이 되진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어딜 가든 사람들은 저의 직업을 물어봐요. ‘지금 하는 일이 없는데요’라고 말하면 나를 잘 설명할 수조차 없게 되죠.” 리스는 한숨을 쉬었다.
전체 실업률이 5%대로 낮아지면서 미국 경제는 회복세에 들어섰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지만, 경기침체 시기 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은 여전히 낮은 임금과 비정규직이라는 악순환에 시달리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10일 보도했다. 특히, 한 번 이상의 해고를 경험한 이들은 다시 직업을 갖더라도 이전에 받던 임금 수준을 회복하기 어려우며, 실직의 상처가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00년,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정보기술 회사에서 해고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리스는 연봉 12만달러를 받는 잘 나가는 ‘화이트칼라’ 노동자였다. 해고 뒤 그는 샌 머테이오 카운티 학교에서 기술자로 다시 취업했지만, 연봉은 6만달러로 반토막이 났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정부는 학교 예산을 축소했고, 리스는 결국 두 번째 해고를 맞았다.
리스처럼 해고를 겪은 실업자들은 이전의 임금 수준을 회복하는 데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틸 반 왁터 캘리포니아대학 경제학 교수는 “해고 뒤 5년 안에 다시 고용되어 이전의 급여 수준을 회복하는 실업자들은 4명 중 1명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실업을 겪은 인구와 그렇지 않은 인구 사이의 임금 차이는 몇십 년이 지나도 좁혀지지 않는데, 한 조사결과 실직자들은 해고당하지 않은 동료에 비해 10년, 20년 뒤의 임금 격차가 각각 15%, 20%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통계상의 수치는 실업이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999년과 2014년 사이 미국의 자살률은 24%가 증가했는데, 이 수치는 금융위기 직전인 2006년부터 급격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실직자들이 정신질환을 앓는 비율은 34%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16%)에 비해 두 배 이상 높다. 또한 부모의 실직은 아이의 분노와 우울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직장을 잃은 부모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향후 소득이 9%정도 낮아진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개인에게 남겨진 해고의 트라우마는 미국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에도 상처를 내고 있다. 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신을 ‘경제적 하층’으로 여기는 미국인들은 2008년 35%에서 2015년 48%로 13%포인트 증가한 반면, 자신을 ‘중상류층이나 중산층’으로 규정하는 미국인들은 2008년 63%에서 2015년에는 51%로 떨어졌다. 제니 브랜드 캘리포니아대학 사회학 교수는 “경기 침체가 개인과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심각하고, 오래 지속된다”며 “빠른 회복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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