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시민들이 식량 배급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다. 카라카스/EPA 연합뉴스
“아이들이 배고프다는데, 할 수 있는 말은 ‘참으라’는 말 뿐이네요.“
지난 17일 베네수엘라의 해안 도시 쿠마나에 사는 레이디 코르도바(37)는 한숨을 내쉬며 냄비에서 끓고 있는 수프를 저었다. 정육점에서 산 닭껍질로 만든 수프였다. 코르도바는 자녀 5명을 비롯해 일곱 가족이 전날 점심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유가 하락 직격탄을 맞은 베네수엘라가 경제난으로 식료품과 생수 등 극심한 생필품 부족을 겪고 있다.
식량 부족 탓에 지난 2주간 수도 카라카스를 비롯해 곳곳에서 일어난 시민 폭동이 50여 차례에 이른다고 <뉴욕 타임스>등이 19일 보도했다. 지난주 쿠마나에서는 군중들이 하루 동안 22개의 상점을 습격해 식료품을 약탈하기도 했다.
시몬 볼리바르 대학의 최근 조사를 보면, 베네수엘라 인구 3041만명 중 87%에 이르는 인구가 음식을 살 돈이 충분치 않은 상태다.
베네수엘라 교직원 연맹 설문조사를 보면, 가구당 월 평균수익의 72%에 이르는 금액이 오직 식료품을 사는 데만 사용된다. 살인적인 물가로 현재 베네수엘라의 월 최저임금(9649볼리바르)으로는 한달치 식량의 16분의 1만 구매할 수 있다. 하루종일 정부의 식량배급만 기다리고 있다는 라이벨리스 엔리케스(19)는 “식료품이 없으면, 폭동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심각한 상황을 전했다.
베네수엘라는 원유가 수출의 95%를 차지하는 남미 최대 원유 수출국이다. 2014년 배럴당 88달러에 이르던 원유가 2015년 35달러까지 하락하자 원유에 의존하던 경제가 급전직하했다. 밀가루나 옥수수처럼 주변국의 수입에 의존하던 식료품 부족은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베네수엘라의 경제난은 오는 26일 총선을 앞두고 있는 스페인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당을 비롯한 우파는 지난 총선에서 제3당으로 등장하며 돌풍을 일으킨 좌파 정당 ‘포데모스’가 “실패한 베네수엘라 경제 모델을 스페인으로 가져오려고 하고 있다”며 정치 공세를 펴고 있다. 포데모스의 공동 창립자인 카를로스 모네도로는 2010년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정권으로부터 경제자문을 대가로 45만5000유로를 받은 바 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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