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의 샌티고등학교 화장실 입구 옆에 성별과 상관없이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라는 안내판이 부착되어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학생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성 정체성’이 아닌 ‘생물학적 성’에 맞게 학교의 화장실을 이용해야 한다는 미국 연방지방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지난 4월 연방 제4항소법원이 성 정체성에 따라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고 내린 판결과는 배치된다. 미국 전역을 휩쓴 ‘화장실 전쟁’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엇갈리면서, 오는 가을 연방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더욱 주목된다.
22일 텍사스 북부 연방지방법원의 리드 오코너 판사는 지난 5월 트랜스젠더(성전환 수술 여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성 정체성과 생물학적 성이 다른 사람) 학생들이 성 정체성에 맞게 화장실과 탈의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시한 연방정부의 지침이 위법하다며 텍사스주를 비롯해 13개주가 동시에 제기한 적법성 판단 소송에서 주 정부들의 손을 들어줬다. 오코너 판사는 “성은 태어날 때 결정된 남녀의 생물·해부학적 차이를 의미한다”고 규정하며, “성별에 따라 분리된 학교 시설은 학생들의 사적인 생활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오코너 판사는 이어 “정부 지침은 ‘특정 성을 지닌 학생에게 제공된 시설은 다른 성에 제공되는 시설과 동등해야 한다’고 규정한 성차별 금지법에 어긋난다“고 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모든 학생들은 성별과 상관없이 동등한 교육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성차별 금지법’에 따라 트랜스젠더 학생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따라 학교시설을 이용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으나, 연방 법원은 같은 성차별 금지법을 이유로 이 지침에 제동을 건 것이다.
판결이 나오자 텍사스주를 비롯해 소송을 제기했던 13개주는 일제히 환영 입장을 밝혔다. 반면, 트랜스젠더의 자유로운 화장실 선택을 주장했던 성소수자 단체들은 공동 성명을 내고 “지난 수년간 노력으로 만들어진 트랜스젠더 학생들의 권리가 한 번의 판결로 뒤집어질 순 없다”며 법원 판결에 반발했다. 법무부 역시 “법원 판결에 실망했다”며 다른 선택지들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연방대법원은 성소수자 화장실 사용 논란에 대해 오는 가을 판결을 내린다. 대법원 최종 판결에 따라 그간 지방법원이나 항소법원에서 내려진 판결은 그 효력을 상실할 수 있다.
지난 3월,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성 정체성에 따른 트랜스젠더의 공공 화장실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시행되면서부터 미 전역에 이를 둘러싼 ‘화장실 전쟁’이 번졌다. 트랜스젠더가 성 정체성에 따라 화장실을 사용한다면 성범죄 위험성이 커질 것이라는 주장과, 트랜스젠더가 성 정체성에 따라 화장실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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