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해외로 공장 이전 계획을 세운 기업과 협상을 통해 공장 이전 계획을 폐지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보호무역 기조를 앞세워 당선된 터여서 협상의 상징성은 커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정권 인수위원회는 에어컨과 히터 등을 생산하는 냉난방 기기 업체 ‘캐리어’와의 협상을 통해 일자리 1000여개를 미국 내에 유지하도록 했다고 <워싱턴 포스트> 등 외신이 31일 보도했다. 캐리어 쪽도 올해 초 약 1400명이 근무하는 인디애나 공장을 2019년까지 멕시코 몬테레이로 이전할 계획을 세웠으나, 이를 철회하고 미국 내에 일자리를 유지하도록 계획을 수정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공화당 경선을 진행하던 지난 4월 캐리어의 공장 이전 방침을 두고 “캐리어의 멕시코산 제품에 엄청난 세금을 부과해, 회사 쪽이 다시 미국에 남겠다고 애원하게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
트럼프 쪽은 이번 협상에서 캐리어 쪽에 규제 완화와 법인세 인하 조처 등을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장이 자리한 인디애나 주정부 역시 캐리어에 혜택을 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트럼프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 당선자는 1일 인디애나주 캐리어 공장을 직접 방문해 협상 결과를 발표한다.
30일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 위치한 ‘캐리어’ 생산공장 입구에 차량이 드나들고 있다. 인디애나폴리스/AP 연합뉴스
중국과 멕시코 등에 빼앗긴 일자리들을 되찾아 오겠다고 약속했던 트럼프 공약을 고려했을 때, 캐리어의 멕시코 공장 이전 계획 철회의 정치적 상징성은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의 보호무역 기조는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등 경합주이자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 지대)의 백인 노동자층 민심을 움직인 일등공신이었다.
트럼프는 지난 22일 <뉴욕 타임스> 기자 간담회에서 “애플이 미국으로 생산라인을 이전하면 세금감면 혜택을 줄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지난주에도 켄터키주에 자리한 포드 자동차의 에스유브이(SUV) 생산 공장을 멕시코로 이전하지 않도록 설득했다고 주장하는 등 대기업을 향한 ‘설득’과 ‘압박’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의 주장과 달리 포드 자동차는 “공장 이전 계획 철회는 트럼프 당선자와 상관없이 이미 결정된 사항”이었다고 반박했지만, 트럼프가 앞으로도 기업들과의 협상에 더욱 공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경제학자인 재러드 번스틴은 “미국인들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트럼프의 이번 협상을 매우 신선하게 느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정치적’ 상징성을 빼고 보면, 이번 협상의 경제적 파급력은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올해 미국에서 한달 평균 18만여개의 일자리가 증가했다는 통계에 견줘봐도 캐리어가 공장 이전을 않고 유지하는 일자리 1000여개는 미미한 수준이다. 또 캐리어의 모회사인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의 1년 매출액 중 10%가량은 정부와의 계약이 차지하는데, 이를 두고 장기적으로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에서 캐리어가 공장 이전 계획을 철회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의 존 머츠 이사는 “정부는 회사의 주요 고객이다. 정부와 호의적 관계로 남는 게 가장 큰 보상책”이라고 말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던 로버트 라이시는 “인건비가 저렴한 멕시코의 매력은 너무나 크다”고 강조하며, 장기적으로 생산비용이 더 저렴한 곳으로 공장을 이전시키려는 추세를 막지는 못할 것이라 내다봤다. 실제로 캐리어 공장 미국 노동자의 1시간 임금인 20~25달러는, 멕시코 노동자의 하루 임금에 해당한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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