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집무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텔의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최고경영자(CEO)의 얘기를 듣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항고심 결정을 앞두고 있는 ‘반이민·난민 행정명령’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제멋대로 행태가 입길에 오르고 있다. 트럼프는 행정명령에 긍정적인 여론조사 결과만을 선별해 홍보하면서 주류 언론을 ‘가짜 뉴스’라고 깎아내리는 한편, 행정명령 항고심을 진행하고 있는 법원을 향해선 “정치적”이라며 비난하는 등 사법부 독립성을 해치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의 태도를 두고 “불평을 늘어놓는 중학생 수준의 대통령”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트럼프는 8일 자신의 트위터에 반이민 행정명령과 관련된 여론조사 3가지를 2시간 새 연이어 게재해 홍보했다. 행정명령에 대한 미국 내 지지 여론이 55%에 이르고, 유럽연합(EU) 10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55%가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지지한다는 내용 등이다.
트럼프는 이처럼 자신에게 유리한 조사결과는 적극 홍보하면서, 똑같은 조사도 결과가 불리한 것은 모두 ‘가짜 뉴스’로 몰아세우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6일 트위터에 선거기간 동안 <시엔엔>(CNN), <에이비시>(ABC) 방송 등 주류 언론이 자신의 당선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모든 부정적인 여론조사 결과는 가짜 뉴스”라고 매도했다. 지난 3일 <시비에스>(CBS)와 <시엔엔>(CNN)이 각각 미국 국민의 51%, 53%가 행정명령에 반대하고 있다는 여론조사를 말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행태에 주변 참모들도 가세하고 있다. 켈리엔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은 8일 행정명령을 두고 <엠에스엔비시>(MSNBC)와 인터뷰를 하면서 “켄터키주 볼링그린에서 테러를 모의하던 이라크 난민 2명이 체포됐지만, 언론은 보도조차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발생하지도 않은 사건이다. 앞서 6일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 역시 별다른 근거없이 “지난 몇십여년간 전문 시위꾼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해 역풍을 맞기도 했다.
반이민 행정명령에 제동을 건 법원을 비난하는 발언도 도를 넘고 있다. 트럼프는 8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보안관협회 연설에서 “법원은 매우 정치적”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행정명령 집행 중단 결정을 내린 제임스 로바트 판사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트럼프가 임명한 닐 고서치 연방대법관 후보자마저 이날 리처드 블루먼솔 민주당 상원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사기를 꺾고 낙담시키는 표현”이라며 실망감을 표시했다.
한편, 트럼프는 8일 미국 대도시경찰협회 연설에서 “행정명령 시행에 한 달쯤 유예기간을 두려 했는데, 관련 참모들이 실행을 밀어붙였다”며 정책 시행의 미숙함을 참모 탓으로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칼럼니스트인 앤드루 로젠탈은 이날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행정명령과 같은 중대한 사안에 토론을 하지 않고, 반발이 있을 경우 참모 탓을 하는 트럼프를 마치 숙제를 하기 싫어하는 중학생에 빗대 “중학생이 징징거리면 짜증이 나지만, 미국의 대통령이라면 매우 두려운 일”이라며 혹평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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