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사표 제출 요구를 거부한 뒤 일방적으로 해고된 것으로 알려진 프리트 바라라 연방검사. 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임명된 연방검사들에게 하루의 말미도 주지 않고 일괄 사퇴를 요구했다. 사법분야에서의 본격적인 ‘오바마 흔적 지우기’ 시도지만 ‘법란’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점령군 같은 행태에다, ‘월가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유명 검사가 사퇴를 거부하자 곧바로 해고해 버리는 등 무리한 강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엔엔>(CNN) 방송 등은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이 10일 오바마 전 대통령 때 임명된 연방검사 46명에게 같은 날 자정까지 사표를 제출하고 즉각 사무실을 비우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이 상원 인준절차를 거쳐 임명하는 90여명의 연방검사는 자신의 관할지에서 연방범죄를 수사하고 이를 법무부에 보고한다. 새 정권이 출범하면 전임 정권 때 임명된 검사들이 자발적으로 사임하는 경우가 있지만, 강제 조처도 아닐뿐더러 후임자가 정해질 때까지는 일반적으로 자리를 지킨다.
트럼프 행정부가 아직 후임자를 정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오바마 검사들’ 강제정리 조처를 내린 것은, 반이민 행정명령, 국경장벽 건설 등 논쟁적 정책을 본격적으로 밀어붙이기 위해 그 전에 먼저 검찰을 장악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트럼프는 최근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신의 전화를 도청했다며 오바마 정부 시절의 법무부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위한 물갈이 성격도 있어 보인다.
워낙 갑자기 진행된 탓에 <폭스 뉴스>의 토크쇼에서 진행자인 숀 해니티가 지난 9일 “연방정부 내 오바마 쪽 인사들을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트럼프 대통령이 보고 저러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특히 이번 지시가 ‘월가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뉴욕 남부지검의 프리트 바라라 연방검사의 즉각 해고로 이어지면서 사태는 커지고 있다. 바라라 검사는 2009년 오바마 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이후 월가의 헤지펀드 비리, 내부자거래, 정치부패 사건 등을 수사하며 명성을 쌓아왔다.
그런데 바라라 검사가 10일 사퇴를 거부하자, 다음날인 11일 데이나 벤테이 법무차관 대행이 전화를 걸어 “트럼프 대통령이 당신을 해고했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직후에는 트럼프타워에서 바라라를 만나 직접 유임을 요청하며, 유임 사실을 언론에 알려도 좋다고까지 얘기한 바 있다. 당시에는 바라라의 높은 명성과 인기를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트럼프의 변심을 두고 ‘러시아 내통’ 의혹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척 슈머 민주당 원내대표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는 분석도 있다. 바라라 검사는 슈머 원내대표의 수석 법률고문을 지냈다. 바라라는 트럼프의 사업에 가장 많은 대출을 해준 것으로 알려진 도이체방크와, 트럼프 정부에 호의적인 <폭스 뉴스>의 모기업인 21세기폭스 등과 관련한 조사도 해왔는데, 추가 수사를 막기 위한 조처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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