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숀 스파이서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정례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직전인 지난해 10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자신을 도청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백악관 참모진들이 “대통령은 도청이 아닌 폭넓은 감시를 의미한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특히, 의회가 정한 시한까지 법무부가 구체적인 도청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트럼프의 도청 주장은 ‘근거 없는 주장’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13일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2016년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트럼프를) 감시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도청이라는 단어를 감시와 같은 행위 등 폭넓은 의미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를 감시한 쪽도 ‘오바마 대통령’으로 특정하지 않고 ‘오바마 행정부’라고 폭넓게 지칭했다. 하루 앞선 12일 켈리엔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도 “전화 도청뿐만 아니라 더 광범위한 도청 방법이 있을 수 있다”며 “전화기나 텔레비전, 심지어 전자레인지 역시 카메라로 변해 도청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트위터에서 사용한 ‘도청’(wiretap)은 ‘전화 도청장치를 이용해서 도청하다’라는 좁은 의미를 뜻한다는 점에서, 참모진들의 발언은 전형적인 물타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트럼프는 지난 4일 자신의 트위터에 “끔찍하다! 오바마가 (선거) 승리 직전에 트럼프 타워에서 나를 도청했다. 매카시즘이다!”, “얼마나 저질스러운가. 이건 닉슨/워터게이트다. 나쁜 사람!”이라는 글을 연이어 올렸다.
콘웨이 선임고문은 자신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뒤늦게 “오바마 대통령이 트럼프를 도청하기 위해 전자레인지를 사용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고 해명했지만, 백악관 참모들이 트럼프의 주장을 수습하기 위해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14일(현지시각)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수석 사진사인 피트 수자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린 사진. 켈리엔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이 지난 12일 인터뷰에서 “전자레인지 역시 카메라로 변해 도청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을 비꼰 것이다. 인스타그램 갈무리
한편, 하원 정보위원회는 이날까지 법무부에 관련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했지만, 법무부는 뚜렷한 증거 자료를 제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청한 정보위 관계자는 이날 오전 <시엔엔>(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오늘까지 법무부에 관련 증거 제출을 요청했으나, 아직 받은 자료가 없다”고 확인했다. 법무부는 이날 오후 늦게 정보위에 증거 제출 시한 연장을 공식 요청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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