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미국·중남미

‘미국 보수의 입’, 성폭력 구설로 ‘아웃’

등록 2017-04-20 13:40수정 2017-04-20 22:11

‘폭스뉴스’ 간판 앵커 빌 오라일리
20년 간 폭스 성장 이끌어온 인물
잇단 성폭력 폭로에도 버텼지만
머독, 냉정한 계산 끝에 퇴출 결정
트럼프, 이달초 언론인터뷰서
“그는 잘못 없다” 옹호하기도
<폭스뉴스>의&#160;간판&#160;앵커였다가 쫓겨난 빌&#160;오라일리. AP 연합뉴스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였다가 쫓겨난 빌 오라일리.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좋은 사람”이라며 싸고돌았던 보수 채널 <폭스뉴스>의 간판 앵커 빌 오라일리(68)가 결국 축출당했다. 저녁마다 시청자 400만명을 끌어모으며 ‘미국 보수의 입’ 역할을 해온 오라일리는 잇단 성폭력 폭로에도 꿋꿋이 버텼지만, 사주 루퍼트 머독은 냉정한 계산 끝에 결국 그를 버리기로 했다.

폭스뉴스의 모회사인 21세기폭스는 19일 “(성폭력) 주장에 대한 철저하고 신중한 검토 끝에 폭스뉴스 채널에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오라일리와 합의했다”고 밝혔다. 4월 초에 <뉴욕타임스>가 피해자가 여럿인 그의 성폭력 행각을 폭로한 지 3주 만이다.

오라일리는 과거에도 기자 경력을 과장했다거나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시비에 휘말렸으나 이번에는 그와 폭스뉴스가 성폭력 피해자 5명과 1300만달러(약 148억원)에 합의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궁지에 몰렸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어느 정도는 사태를 낙관했다. 피해 사실을 일절 발설하지 않는다는 게 합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합의를 맺지 않은 피해자들이 더 있다는 점이다. 방송인 출신인 ‘6번 피해자’ 웬디 월시는 오라일리가 프로그램 고정 출연을 대가로 성관계를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월시는 ‘오라일리 팩터’의 한 꼭지에 비정기적으로 출연하던 2013년, 오라일리가 로스앤젤레스의 호텔식당 저녁 자리에서 고정 출연을 시켜주겠다며 호텔방으로 함께 가자고 했다고 밝혔다.

오라일리의 성폭력을 폭로한 웬디 월시.
오라일리의 성폭력을 폭로한 웬디 월시.
둑이 터지자 또다른 고발이 잇따랐다. 역시 폭스뉴스 출연자인 흑인 여성 제무 그린은 오라일리가 2007년 분장실에서 가슴골을 더 보여달라고 했다고 폭로했다. 또 그가 “허리를 분지르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오라일리한테 “핫 초콜릿”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사무직원 증언도 나왔다. 앞서 오라일리는 2004년에는 자위행위를 하며 여성 조연출한테 전화한 내용이 녹음돼 900만달러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리사 블룸 변호사는 “여성들이 공개적으로 진실을 밝히면 용을 죽일 수 있다”며 오라일리의 사퇴 소식을 반겼다.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저지른 오라일리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주인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의 비호도 있다. 지난 20년간 오라일리는 폭스뉴스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저녁 8시부터 진행하는 ‘오라일리 팩터’는 올해 1분기에 하루 평균 400만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았다. 케이블 뉴스 사상 최고 기록이고, 시청자는 갈수록 늘고 있었다. 21세기폭스의 영업이익에서 폭스뉴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10%대 후반에서 지난해 25%까지 상승했다. 오라일리는 지난달 폭스뉴스와 3년간 1800만달러짜리 계약을 새로 맺었다. 그의 신랄한 화법과 주류 신문 등에 대한 공격은 폭스뉴스의 성장과 미국 시민들의 보수화에 공히 기여했다.

하지만 머독은 오라일리를 계속 지켜주면 득보다 실이 커질 것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오라일리 팩터’의 광고주들은 최근 반이나 빠져나갔다. 머독은 영국 위성방송 <스카이티브이>를 140억달러를 들여 사려고 한다. 2011년에 인수에 거의 성공했지만, 그가 경영하는 영국 매체가 유명인들 전화를 해킹해 기사로 활용한 사실이 드러나 물거품이 된 바 있다. 오라일리 사건은 머독의 재시도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폭스뉴스는 이번 일로 스타 앵커를 잃었을 뿐 아니라 매체 이미지도 크게 먹칠을 당했다. 지난해에는 폭스뉴스 회장 로저 에일스가 미스아메리카 출신 진행자에게 “우리 진작에 성관계를 했어야 하는데, 그래야 당신도 좋도 나도 좋을 텐데”라고 말한 사실이 녹음당해 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에일스나 오라일리나 잘못을 부인하기는 마찬가지다. 오라일리는 “지난 20년간 폭스뉴스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성공한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이끌어온 사실이 아주 자랑스럽다”면서도 “완전히 근거 없는 주장 때문에 (폭스뉴스와) 결별하는 게 굉장히 가슴 아프다”고 밝혔다.

오라일이나 사주 머독과도 친한 트럼프 대통령도 상심에 빠질 것 같다. 트럼프는 과거에 ‘오라일리 팩터’ 등 폭스뉴스 프로그램에 단골로 출연해 인기를 끌어올렸다. 그는 이달 초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오라일리를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며 “내 생각에 그는 잘못한 게 없다”고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1.

트럼프 ‘호주 관세 예외’에 일본 “우리 철강·알루미늄도” 기대감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2.

‘누가 뭐래도 내가 실세’...트럼프 앉혀두고 오벌오피스에서 브리핑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3.

트럼프, 요르단 국왕에 대놓고 “미국이 가자지구 가지겠다”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4.

D-30, 트럼프 철강 관세 실행 …BBC “한국도 영향 불가피”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5.

“이혼해도 가족”…데미 무어, 치매 브루스 윌리스 매주 찾아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