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인종주의와 극우주의 세력에 대한 비판을 다시 거부했다. 그는 특히 존재하지도 않는 ‘대안좌익’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내며 진보 및 자유주의 세력을 비난하기도 했다.
인종주의, 극우 쪽으로 다시 선회
트럼프는 15일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발생한 백인민족주의 세력의 난동을 두고 기자들과 거친 문답을 주고받은 끝에 “양쪽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여러 편”에 책임이 있다고 한 이전 발언으로 다시 후퇴한 것이다.
트럼프는 “폭력 사태에 대안우익이 연관됐다고 존 매케인 상원의원이 말했다”는 기자의 질문에 “대안우익을 정의해보라”며 반박을 시작했다. 이어 “대안우익을 공격한 대안좌익은 뭔가? 그들은 죄가 있지 않은가? 그들이 곤봉을 휘두르고 공격한 사실은 뭔가? 그들도 문제가 있지 않은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안좌익’이 “아주, 아주 폭력적”이었다고 비난했다.
‘대안좌익’이란 용어는 트럼프가 처음으로 한 말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정계 입문을 전후해 등장한 새로운 극우 세력인 대안우익이 샬러츠빌 사태로 비난받자, 대안좌익이란 말을 만들어 사태를 희석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한쪽에 나쁜 그룹이 있고, 다른 쪽에 아주 폭력적인 그룹이 있다”며 “아무도 그걸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그걸 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인종주의와 극우주의 세력에 반대해 시위에 나선 쪽에도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극우 집회 세력을 옹호하기도 했다. 그는 “나는 신나치들을 비난했고, 많은 다른 단체들을 비난했다”며 “그 사람들 모두가 신나치가 아니다. 나를 믿어라. 아무리 봐도 그 사람들 모두가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로버트 리 동상의 철거를 항의하려고 거기 갔다”며 “이번주는 로버트 리, 스톤월 잭슨, 다음주는 조지 워싱턴이냐”며 “워싱턴 초대 대통령도 노예를 소유했다”고 빈정댔다. 남북전쟁 때 남부 쪽의 상징물인 리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려는 샬러츠빌 시의 결정에 항의한 백인민족주의 세력을 옹호한 것이다.
인종주의와 극우는 트럼프의 마지막 보루
이런 발언에 미국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미국에서 가장 인화성이 높은 인종주의를 대통령이 옹호하며, 그런 세력과 같이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 편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가 거센 비판에 직면하자 “인종주의는 악이며, 큐클럭스클랜(KKK), 신나치, 백인우월주의자 등은 범죄자이며 폭력배들”이라고 비판한 발언을 다시 뒤집었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가 백인우월주의자들을 명백히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가 대안우익 쪽에 서겠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사회의 반발은 정치 문제에 거리를 두려는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최근 백악관 자문위원회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최근 이틀간 대통령의 ‘제조업 일자리 계획 위원회’에서 6명의 최고경영자 등이 그만뒀다. 스콧 폴 미국일자리연대 회장, 최대 노조인 미국노동총연맹-산별노조협의회의 리처드 트럼카 위원장이 이날 사퇴했다. 전날에는 인텔·머크·언더아머 등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그만뒀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는 앞서 트럼프가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한 직후 사임했다. 더그 맥밀런 월마트 최고경영자는 전날 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우월주의자들의 끔찍한 행동을 명백히 거부함으로써 우리 나라를 단결시키는 데 도움을 줄 기회를 놓쳤다”고 비난했다.
트럼프가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인종주의와 극우세력을 다시 비호하는 쪽으로 돌아선 것은 열성 지지층을 놓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이미 지지율이 30%대 중반으로 역대 최악에 처한 상황에서 백인민족주의 세력마저 비판한다면 기댈 곳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퇴 압력을 받는 백인민족주의 이론가인 스티븐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옹호한 데서도 이런 모습이 드러난다. 트럼프는 “나는 배넌을 좋아한다. 그는 나의 친구다. 좋은 사람이다. 인종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옹호했다.
배넌은 최근 신뢰를 잃어 트럼프와 대면하지 못한다고 알려지면서 해임이 임박했다는 추측이 나돌았다. 하지만 트럼프가 그의 해임이 백인민족주의 세력의 지지 철회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