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관이 음파 공격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쿠바 아바나의 카프리호텔. 아바나/AP 연합뉴스
쿠바 아바나에 나와 있던 한 미국 외교관은 호텔방 침대에서 신경을 건드리는 소음을 들었다. 침대 옆으로 몇 걸음 옮기면 소리가 사라졌고, 침대로 돌아오면 다시 소음의 공격이 시작됐다. 보이지 않는 벽이 호텔방을 날카롭게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뒤 이 외교관은 청력에 이상이 생겼고 언어 능력에도 문제가 생겼다. 그를 포함해 쿠바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일한 외교관과 가족 최소 21명한테서 경미한 뇌손상과 두통 등 비슷한 증세가 나타났다.
미국이 쿠바 아바나에서 벌어진 자국 외교관에 대한 ‘건강 공격’을 이유로 아바나 대사관 폐쇄까지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외교관들에게서 증상이 나타났고, 지난 2월 미국 정부가 쿠바에 이를 항의하고 5월에는 워싱턴 주재 쿠바 외교관 2명을 추방했는데도 지난달 또 환자가 발생한 탓이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17일 <시비에스>(CBS) 인터뷰에서 아바나 대사관 폐쇄 여부와 관련해 “현재 평가하고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5년 54년 만에 쿠바 대사관을 재개설한 지 2년 만에 또다시 대사관을 폐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바나 주재 외교관을 진료한 마이애미대 의료진은 일종의 음파 장치에 노출될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판단한다. 미 외교 전문가들 역시 도청 등 감시 장치가 잘못 작동해 문제를 일으켰으리라 추정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음파로 특정 타깃을 공격할 수 있으나 비밀 작전을 수행하기엔 장비가 너무 크고, 이처럼 다양한 증상을 유발하는 단일 음파 장비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건의 배후와 원인은 더더욱 미스터리다. 사건이 처음 확인된 건 지난해 10월이다.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한 쿠바 정부가 굳이 미 외교관을 공격할 이유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쿠바 전문가인 윌리엄 레오그란데 아메리칸대 교수는 <뉴욕 타임스>에 “현존하는 모든 의혹이 다 이상하다”고 말했다.
쿠바 정부는 배후설을 강하게 부인하면서 자국 외교관 추방을 “부당하고 근거 없는 조처”라고 비난해왔다. <뉴욕 타임스>는 이 사건을 처음 접한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첫 반응이 ‘명백한 우려’였다고 전했다. 심지어 쿠바는 이례적으로 미 연방수사국(FBI)이 아바나에서 이 사건을 조사하도록 허락했다.
일부에서는 미국과의 화해를 반기지 않는 쿠바 고위층이나 정보당국 독자 조직이 정부 허락 없이 일을 벌였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지난 8월 캐나다가 자국 외교관들도 비슷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밝히면서 사건은 더욱 미궁에 빠졌다. 레오그란데 교수는 “쿠바는 캐나다와 매우 좋은 관계를 이어왔기 때문에, 심지어 독자 조직의 작전이었다 해도 쿠바가 고의로 해를 입혔다고 보기엔 좀 이상하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러시아를 배후로 의심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첫 공격 시점이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때와 일치하고, 1950~60년대 모스크바 미 대사관에 대한 공격과 유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현재 쿠바 정부의 공격, 쿠바 정보당국의 독자적 공격, 러시아 등 제3국의 공격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하고 있다고 <에이비시>(ABC) 방송이 전했다.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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