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87)가 자신이 만든 오픈소사이어티재단에 180억달러(20조3634억원)를 쾌척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에서 거부들의 기부와 자선재단 운영이 드물지는 않지만, 개인이 한 재단에 이런 거액을 기부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소로스가 세계 각국에서 민주주의와 개방 사회, 빈곤 퇴치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는 오픈소사이어티재단에 180억달러의 재산을 내놨다고 17일 보도했다. 이로써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의 자산 규모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립자가 만든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이어 두 번째 규모로 커졌다. <뉴욕 타임스>는 매년 8억~9억달러를 이 재단에 내놓던 소로스가 최근 몇년 새 기부액을 크게 늘려 모두 180억달러에 이르게 됐다고 전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다른 기부액을 합치면 소로스가 평생 기부한 금액은 320억달러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헝가리 출신 유대인으로 헤지펀드 투자로 거액을 번 소로스는 1979년부터 사회 참여 활동에 나섰다. 1947년에 헝가리를 떠나기까지 나치 점령기와 공산당 통치를 경험한 그는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 등 개방성이 중요하다고 보고 동유럽에서 이를 고무하는 활동을 지원했다. 1984년에는 공산당의 정보 독점이 민주화의 걸림돌이라며 헝가리 대학과 도서관들에 복사기를 보급했다. 그해에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을 설립했다.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은 규모와 활동 반경을 넓히면서 120여개국에서 경제 발전, 인권, 민주주의, 보건, 정보 접근권 등의 분야에서 지원 활동을 전개했다. 지금까지 이 재단이 공여한 지원액은 140억달러에 이른다.
소로스는 미국 안에서도 민주당의 유력한 후원자로 자유주의적 가치와 정책을 열성적으로 지원해왔다. 이민, 형사사법, 소수인종 문제에 대한 그의 진보적 주장과 지원은 보수주의자들의 공격 대상이 돼왔다.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은 최근 미국에서 동성애와 경찰 폭력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표적 반대자다. 지난해 11월 자신이 적극 지원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트럼프 대통령한테 패하자 “어둠의 세력이 깨어났다”고 한탄했다.
소로스는 모국인 헝가리의 우파 정부와도 갈등을 빚고 있다. 소로스가 유럽 국가들은 난민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헝가리 정부는 그가 이 나라에 세운 대학에 대한 인가를 취소하겠다고 나섰다. 유럽을 이민자들로 채우려고 한다며 소로스에 대한 공격을 주도하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공교롭게도 1980년대에 소로스가 주는 장학금으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한 인물이다. 역시 난민·이민 문제에 강경한 폴란드와 루마니아, 마케도니아 등 동유럽 국가들도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이나 이 재단과 연계된 단체들을 단속하고 나섰다.
소로스는 1992년 영국 파운드화에 대한 공격 등으로 냉혹한 투기꾼이라는 비난도 받았으나 세월이 갈수록 적극적 기부와 정치·사회적 발언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그의 주변에서는 거액 기부는 사후를 대비해 자산을 미리 이전해놓은 것으로 보고 있다. 소로스의 투자 회사도 외부 자본을 줄여왔다.
이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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