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 차를 타고 버지니아주 스털링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을 떠나고 있다. 안경을 낀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이 포착된 건 매우 이례적이다. 스털링/AP 연합뉴스
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이 배우 등을 상대로 저지른 수십 건의 성추행·성폭행이 폭로되면서, 미국의 권력자 남성들의 성범죄 문제가 잇따라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와인스틴이 와인스틴컴퍼니에서 해고되고 아카데미협회에서 제명되는 등 ‘응분의 대가’를 치르는 가운데, 11명의 여성이 성추행을 폭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해 ‘왜 예외여야 하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해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트럼프 후보의 성추행을 폭로한 피해자들의 박탈감을 22일 전했다. 지난해 여성 11명이 1980년대부터 2007년까지 “트럼프가 원치 않는 신체 접촉과 키스를 했다”고 밝혔으나, 트럼프는 이 여성들을 “끔찍한 거짓말쟁이”라고 반박하며 위기를 모면했다.
피해자 중 한명인 제시카 리즈는 “하비 와인스틴은 이 일로 무너질 수 있고, 트럼프는 계속 ‘테플론 돈’(스캔들과 비난이 테플론 코팅처럼 들러붙지 못하는 도널드)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리즈는 30년 전 비행기 안에서 트럼프가 자신의 몸을 더듬었다고 폭로했다.
리즈를 비롯한 여성들이 권력자의 성추행을 세상에 알린 지 1년, 범행 수법이 거의 흡사한 ‘와인스틴 스캔들’이 폭발했다. 1년 전 피해 여성들은 트럼프가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오르는 걸 막지 못했지만, 이번엔 1년 전과 달리 사회적으로 신속한 ‘응징’이 이뤄졌다.
<폭스 뉴스>의 스타 앵커 빌 오라일리는 동료 여성들을 성추행한 혐의로 지난 4월 쫓겨난 뒤 “누구한테 어떤 잘못도 한 적이 없다”며 재기를 모색해왔으나, <뉴욕 타임스>가 21일 “오라일리가 폭스 법률담당 리스 윌한테 성추행 합의금으로 3200만달러를 지급했다”고 보도해 또다시 곤경에 처했다. 1991년 영화 <벅시> 시나리오를 쓴 할리우드 유명 영화감독 겸 극작가 제임스 토백은 10여년간 배우 등 38명을 성추행한 혐의가 22일 폭로돼 ‘제2의 와인스틴 사태’로 비화되리란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를 고발했던 여성들은 비슷한 사건에서 왜 미국 사회의 대응이 다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케시 헬러는 1997년 트럼프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브런치를 먹다가 트럼프한테 강제로 키스를 당했다고 폭로했으나, 이 폭로가 트럼프를 전혀 위축시킬 수 없다는 데 경악했다고 밝혔다. 헬러는 “와인스틴한테 피해를 당한 이들 중 다수는 우리 모두가 들어본 여배우다. 피해자가 유명 인사일 때, 그(트럼프)가 마러라고나 미인대회에서 만난 사람들(피해자)보다 더 무게감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대선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유권자의 3분의 2는 트럼프가 여성들에게 원치 않는 성적인 행동을 했으리라 생각한다고 답했지만 선거 결과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헬러는 “와인스틴이 자기 프로덕션에서 쫓겨나 기쁘다. 마침내 어떤 조처가 진짜로 취해졌다”며 “우리는 트럼프에 대해서도 곧 (그런 조처를) 보게 될 것이며, 결코 늦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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